2018년 12월 12일 수요일

2017.5.18 [書評]『「国民主義」の時代』 [서평] 『「국민주의」의 시대』


연이어 소개 글입니다만, 오늘은 만만치 않습니다.

 

[書評]『「国民主義」時代』
서평] 『「국민주의 시대

小林和幸 著 고바야시 카즈유키

奥 武則 오쿠 타케노리

WEBRONZA 20170518


もうつの政治勢力」たした役割
하나의 정치세력 완수한 역할

 「国民主義」って、何のこと?と思う人が、たぶんいるだろう。「国民主義」は国家主義や民族主義と同じように、ナショナリズムの訳語として使われてきた言葉ではある。だが、《「国民主義」の時代》となると、よく分からない。そこに「明治日本を支えた人々」という副題が重なる。どういうことといういが
국민주의라고 뭔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마도 있을 것이다. 국민주의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와 같이 내셔널리즘의 번역어로 쓰여 말이다. 그러나,  《「국민주의 시대 되면, 모르겠다. 거기에 메이지 일본을 떠받친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겹친다. 뭐라는 거냐?  라는 생각이 점점 심해진다. 

 そんな思いで書店の本棚で本書を手にした。
그런 생각에서 책방의 선반에서 책을 손에 넣었다.


『「国民主義」時代――明治日本えた人々』(小林和幸 著 角川選書) 定価:本体1700円+税
『「국민주의 시대- 메이지일본을 떠받친 사람들 (코바야시 카즈유키 카도카와센쇼 정가 본체 1,700 + 소비세

 読後、著者がこのタイトルに込めた気持ちは、よく分かった。《「国民主義」の時代》と呼ぶかどうかはともかくとして、明治日本にたしかにあった一つの思想潮流に光を当てた意欲的な内容である。
읽은 나서 저자가 이런 타이틀에 담은 기분은 알게 됐다. 《「국민주의 시대라고 부를지 어떨지는 어찌했든 간에, 메이지 일본에 분명히 있었던 하나의 사상 조류가 빛을 보게 의욕적인 내용이다.

 明治日本は短期間に憲法と議会を持つ立憲政治体制を確立した。むろん、その体制は「神聖にして侵すべからず」という天皇をいただくものであった。
메이지 일본은 단기간에 헌법과 의회를 가진 입헌정치체제를 확립했다. 물론, 체제는 신성한 것으로 침범해서는 안된다 텐노우天皇 주시는* 것이다.
* 주시는이라는 문구가 눈살이 찌푸러집니다만, 大政奉還taiseihoukan으로 幕府bakufu 가지고 있던 정권을 텐노우에게 반환하는 것이 메이지 유신의 가지 키워드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의 중앙집권 정책인 廃藩置県heihanchiken 뒤에… – 옮긴이

 私たちは、その悲惨な結末も知っている。しかし、明治日本が非西欧社会にあって着実に近代化の道を歩んだことはまちがいない。この「成功」はいかにして成し遂げられたのか。
우리들은 비참한 결말도 모르고 있다. 그러나, 메이지 일본이 비서구사회로서 착실하게 근대화의 길을 걸은 것은 틀림이 없다. 성공 어떻게 해서 이룰 있었던 걸까?

 「民」の力があった。国会開設を求めた自由民権運動が典型だろう。一方、当然に「官」の力が大きかった。伊藤博文に代表される政府の憲法制定への努力をあげることができよう。だが、「もう一つの政治勢力」が果たした役割も大きかったと著者はいう。
힘이 있었다. 국회 개설을 요구한 자유민권운동이 전형일 거다. 한편, 당연히 힘이 컸다. 이토우 히로부미伊藤博文 대표되는 정부의 헌법 제정을 하도록 노력을 들일 있을 테다. 그러나 하나의 정치세력 완성한 역할도 컸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明治初年、士族や農民の反乱が続発した。急激な西洋化を進める専制的な藩閥政府に対する反発がその基底にあった。「もう一つの政治勢力」は、こうした専制的な藩閥政府を批判し、一方で民権派の過激な主張や行動を国家の統合を乱すものとして抑制を求めた。
메이지 초기, 사족士族* 농민의 반란이 계속 터졌다. 급격한 서양화를 진행하는 전제적인 번벌정부藩閥政府** 대한 반발이 기저에 있었다. ‘ 하나의 정치세력 이런 전제적인 번벌정부를 비판하며 한편으로 민권파의 과격한 주장과 행동을 국가 통합을 어지럽히는 것으로 억제를 요구했다.
* 무사의 집안으로 메이지 유시 이후 무사계급 출신에게 주었던 호칭입니다

** 사츠마薩摩(현재의 카고시마), 토사土佐(현재의 코오치), 쵸우슈長州(현재의 야마구치), 히젠肥前(현재의 나가사키) 등의 출신들에 의해 구성된 과두체제였던 메이지 정부를 가리킵니다. 사실상 이들이 각각 독차지한 사츠마 해군, 쵸오슈 육군, 사츠마 헌병/경찰 간의 갈등과 법원과 검찰, 그리고 총리 자리를 두고 벌인 지나친 경쟁이 2차세계대전에까지 이르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옮긴이

 むろん、「旧社会」への復帰を求める復古的な主張は排される。憲法制定や国会開設は当然と考えられた。立憲政治体制を確立することで国民に過大な負担を強いる政府を監視し、特定集団の私的な利益追求を抑制しようとしたのである。
물론, ‘구사회로의 복귀를 요구하는 복고적인 주장은 배척당한다. 헌법 제정과 국회 개설은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헌법정치체제를 확립하는 것으로 국민에게 과대한 부담을 강요하는 정부를 감시하고, 특정 집단의 사적인 이익 추구를 억제하자고 했던 것이다.

 著者は、こうした「もう一つの政治勢力」について、次のように書く。
저자는 이러한 하나의 정치세력 대해서 다음과 같이 쓴다.

 《彼らは、国家国民全体利益(公共利益)行動らの運動位置づける
그들은 국가와 국민전체의 이익(공공의 이익) 지키는 행동과 자신들의 운동을 자리 매겼다

 明治日本において、「もう一つの政治勢力」は単一の政党や団体として組織されたわけではない。一人の指導者が率いた運動でもない。政治家や思想家のみならず、軍人や新聞記者もいた。だが、彼らはしばしば中核的な人物のもとに連携・結集して運動を展開し、国民を動かした。
메이지 일본에 있어 하나의 정치 세력 단일한 정당이나 단체로서 조직된 것은 아니다. 한사람의 지도자가 이끈 운동도 아니다. 정치가와 사상가만이 아니고, 군인과 신문기자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누차 중핵적인 인물을 바탕으로 연계결집해서 운동을 전개하고, 국민을 움직였다.

 こうした政治勢力を、著者は「国民主義」の勢力と呼ぶ。
이런 정치세력을 저자는 국민주의세력이라고 부른다.

 明治日本について、国民と国家、国権主義と平和主義、国粋主義と西洋化といった対立図式で捉えようとする理解がある。著者は《そのように自明化された対立図式は、あらためて問い直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はないか》と述べる。その「問い直し」の視点が、つまりは著者のいう「国民主義」である。
메이지 일본에 대해서, 국민과 국가, 국권주의와 평화주의, 국수주의와 서양화 라는 대립 도식으로 파악하자는 이해가 있다. 저자는 이렇게 자명화된 대립 도식은 새삼스레 다시 물어 보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한다. 다시 묻는시각이 결국 저자가 말하는 국민주의.

 登場する人物は、佐佐木高行、谷干城(たてき)、曾我祐準(すけなり)、鳥尾小弥太、近衛篤麿、三浦悟楼、陸羯南(くが・かつなん)、笹森儀助らである。
등장하는 인물은 사사키 타카유키, 타니 타테키(Tateki), 소가 스케노리(스케나리), 토리오 코야타, 코노에이 아츠마로, 미우라 고로, 코가 카츠난(Koga Katsunan), 사사모리 기스케 등이다.*
*
하나같이 죄다 생소하기만 합니다만, 메이지유신의 핵심인물들로 이후 정치가나 군인으로 일본의 근대화에 역할을 합니다 옮긴이

 これらの人々は「保守主義者」あるいは「守旧派」といったかたちで言及されることが多い。だが、この手のレッテルは実のところ何の意味もない。著者は、憲法制定・議会開設・条約改正・日清戦争・日露戦争など、具体的な局面での彼らの言説と行動を丹念に追究し、「もう一つの政治勢力」が「もう一つ」であった内実とその影響力に光を当てている。
그런 사람들은 보수주의자또는 수구파라고 말하는 투로 언급된 것이 많다. 그러나 손에 레테르* 구체적인 국면에서의 그들의 언설과 행동을 정성껏 추구해서 하나의 정치세력 하나였던 내실과 영향력에 빛을 비추고 있다.
* letter라고 쓰지만 영어가 아니라 네델란드어로 레테르 표준어입니다 옮긴이] 실제로 어떤 의미도 없다. 저자는 헌법 제정, 의회 개설, 조약 개정, 청일전쟁, 러일전쟁[ 전쟁 모두 일본이 승리했지만, 영어로는 각각 The First Sino-Japanese War, Russo-Japanese War 씁니다 옮긴이

 「中核的な人物」としてもっとも重視されるのは、谷干城である。谷については、著者はすでに『谷干城――憂国の明治人』(中公新書)という評伝を著している。今回、同書も合わせ読み、この人物について知ったことは数多い。
중핵적인 인물이라고 원래 중시되었던 것은, 타니 타테키다. 타니에 대해서는, 저자는 이미 타니 타테키 우국의 정치인’(추우코우신쇼)이라는 평전을 썼다. 이번에 같은 책도 함께 읽고 인물에 대해 알게 것이 많다.

 谷は、西南戦争に際して熊本鎮台(熊本城)攻防戦を指揮して政府軍を勝利に導いた軍人として知られる。私もそのこと以外では、陸羯南の新聞『日本』のスポンサーだったという程度の知識しかなかった。
타니는, 세이난센소우에 즈음해서 쿠마모토신타이(쿠마모토 ) 공방전을 지휘해 정부군을 승리로 이끈 군인으로 알려졌다. 나도 그건 이외에는 코가 카츠난의 신문 『日本』 스폰서였다는 정도의 지식 밖에 없었다.

 谷は貴族院を舞台に精力的に活動した政治家であった。議会で演説し、意見書を発表し、伊藤博文をはじめ政府の要路の人々にたびたび書簡を送った。それらは一貫して著者がいう「国民主義」に基づくものだったのである。
타니는 키조쿠인* 무대로 정력적으로 활동을 정치가였다. 의회에서 연설을 하고, 의견서를 발표하고, 이토우 히로부미를 시작으로 정부 요직의 사람들에게 때때로 편지를 보냈다. 그것들은 일관되게 저자가 말하는 국민주의 기반을 것들이었던 것이다.
* 양원제인 일본의 상원에 해당하는 현행 상기인参議院 전신입니다. 이하 귀족원 옮긴이

 谷は、貴族院では曾我祐準らとともに言論や政治活動を制限する保安条例や新聞紙条例の廃止や改正を目指す活動を行う。そうした主張は、憲法の諸条項に照らして展開された。
타니는 귀족원에서는 소가 스케노리 등과 함께 언론과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보안조례와 신문[]지조례의 폐지와 개정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을 폈다. 이러한 주장은 헌법의 여러 조항에 비춰서 전개된다.

 たとえば、新聞紙条例の新聞発行停止条項については、憲法二十九条の言論出版集会自由の精神を背き、輿論に反し、憲法政治上「言語道断」であると強く批判した。著者は第八議会での谷の演説を引く。新聞紙法案として衆議院から回付された法案について、次のように発行停止の削除を求めたのである。
예를 들면, 신문지조례의 신문발행정지조항에 대해서는 헌법29조의 언론출판집회자유의 정신을 등지고, 여론에 반하며, 헌법정치 언어도단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저자는 8의회에서의 타니의 연설을 인용한다. 신문지법안으로서 중의원에서 붙여진 법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발행 정지의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此立憲政体精神んじ進歩人民して相談してやるとうの御精神ならば今日もっともくの必要なる時期》
입헌정체의 정신을 중히 여기고, 나라의 진보는 인민과 함께 논의하고 함께 상담해서 하는 [것이] 텐노의 정신이라면 오늘[] 무엇보다도 그것을 없애는 [것이] 필요해진 시기

 ここに、著者は「国民主義」の根本的な主張をみる。
여기서 저자는 국민주의 근본적인 주장을 본다.

 日清戦争から日露戦争に至る時期、「対外硬」と総称されるグループをはじめ、ロシアに対する強硬論が強くなる。こうした中、谷は一貫して非戦論を貫く。「我が地形守るに便なると共に又大陸侵入には最も不便なり」と述べ、領土拡大にも批判的だった。
청일전쟁에서 러일전쟁에 이르는 시기, ‘대외강경파taigaikou’이라고 총칭되는 그룹을 시작으로 러시아에 대해 강경론이 강해졌다. 그런 가운데, 타니는 내내 비전론非戦論으로 일관한다. ‘우리의 지형을 지키기는 편하며 또한 대륙 침입에는 가장 불편하다 이야기하고, 영토확대에도 비판적이었다.

 しかし、日露戦争に「勝利」した日本は、列強の植民地獲得競争に参入していく。しかし、谷はこうした流れにも抗した。明治39年、「戦後の軍備に就て」という文章で次のように述べている。
그러나 러일전쟁에 승리 일본은, 열강의 식민지 획득 경쟁에 참가해 간다. 그러나, 타니는 이러한 흐름에도 반대한다. 메이지 39[서기 1906 - 옮긴이] ‘전후 군비에 대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我輩が思うに、我国民が戦争をするなど云う観念を持つて居るのが、大に間違つた事である。……我国戦後の最大急務は、決して師団を増設することでもなければ、海軍の拡張を計るのでもない。経済的発展則ち商工業の発達を企図するにある。……如何軍隊計強大になつた、課税誅求借金めに、国民一般疲弊して饑渇くとうが状態つたならば、到底国家強大すことは
우리들 생각에는, 우리나라 국민이 전쟁 등을 한다고 하는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우리나라 전후 최대의 급선무는 결코 사단을 증설하는 것도 아니라면(아니고? – 옮긴이), 해군 확장을 꾀하는 것도 아니다. 경제적 발전 상공업의 발달을 기도하는 있다. …어떻게 해서든 군대만 강대해진 데서, 과세 주구[강제징수. 가렴주구苛斂誅求 주구입니다. – 옮긴이] 때문에, 국민 일반이 피폐해서 기갈에 우는 것과 같은 상태에 빠지면, 도대체 국가의 강대함을 가져오는 것은 어렵다*
* 100여년 전의 문체이기도 하거니와, 사소하지만 일부는 구식 표기법으로 독해가 어렵습니다. – 옮긴이

 明治44513日、谷は没した。明治天皇が死去する12カ月前である。
메이지 44[서기 1911 옮긴이]512, 타니는 죽었다. 메이지 텐노우가 죽기 1 2개월 전이다.

 いま私たちは「国民主義」をどう語ればいいのか。「国家と国民全体の利益(公共の利益)」と言っても、問題は明らかにその先なのだ。明治とともに、《「国民主義」の時代》も遠いということか。
지금 우리들은 국민주의 어떻게 얘기하면 좋을까? ‘국가와 국민전체의 이익(공공의 이익)이라고 얘기해도, 문제는 분명히 다음부터이다. 메이지와 함께 《「국민주의 시대 머나멀다고 하는 걸까?

 いや、そうではないだろう。《「国民主義」の時代》を一つの時代足らしめた要素は、「国家と国民全体の利益(公共の利益)」をめぐる真摯な言論ではなかったか。谷が貴族院で行った演説や意見書などがその典型である。《「国民主義」の時代》は過ぎ去って久しい。だが、明治日本の経験から私たちが学ぶものは少なくない。
아니다, 그건 아닐 것이다. 《「국민주의 시대 하나의 시대답게 하는 요소는 국가와 국민 전체의 이익(공공의 이익) 둘러싼 진지한 언론이 아니었을까? 타니가 귀족원에서 행한 연설과 의견서 등이 전형이다. 《「국민주의 시대 지나가 버리고 오래다. 그러나, 메이지 일본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들이 배울 것은 적지 않다.

 

책의 저자는 아오야마가쿠인青山学院 대학의 일본근현대사 전공 교수, 서평의 필자는 역시 일본 근현대사 전공의 호우세이法政 대학 교수입니다. 그런 저명한 역사학자인 필자가 글머리를 시작하면서 대로, 국민주의가 뭔데? 라는 물음이 앞섭니다.

민권주의 내지는 국민주권주의를 말하는 건가 싶었지만, 생겨난 국민–citizen 아니라 nation–의식 자극해서 국익이라는 명분으로 호전적 팽창주의가 가져 것은 결국 국민의 눈물이라는 것을 타니 타테키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광기 넘치는 전체주의와 얼치기 애국주의가 에포크 La belle époque-식민지를 얻고, 국민교육이 시작되고, 강대국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경험이라면 일본도 좋은 시대 경험했다고 해야겠죠?- 산물인 낭만주의라는 소스로 버무려져 비참한 결과를 무시하며 내달릴 따름입니다.

사실 그들이 승리한 개의 전쟁이 일본으로서는 총력전이었지만 상대에게는 국지전에 불과했음을 생각하면, 필자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만, ‘승리라고만 수도 없는 -따리엔大連 203고지 전투 참상은 수도 없이 이야기되고 있고, 전사자가 75천여명에 달했고, 1905년의 군사비는 GDP 1/4 육박했습니다 - 러일전쟁의 승리 도취되어 욱일승천 기세로 달음박질 치던 일본에 대한 100여년 전의 경고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하겠습니다. 아니, 혹시 우리에게는타니의 다른 주장인 입헌주의의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반에 藩閥政府hanpatsuseifu 나오는데요, 번벌정부는 1867년의 메이지 유신부터 정당 내각이 등장한 1918년까지 번벌정치를 행하던 정부입니다. 藩閥hanpatsu이란 메이지 유신에 공이 있는han 출신을 바탕으로 정치 파벌을 말합니다. 한편, 번이란 에도시대에 大名Daimyou 통지하던 영지로 메이지 유신으로 폐지되었는데요[廃藩置県heihanchiken], 개의 번이 합쳐서 하나의ken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의 43 현은 1889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이어 등장하는 西南戦争seinansensouo 1877 메이지 유신에 반대한 사이고 타카모리西郷隆盛 일으킨 반란으로 정부군에게 진압되고, 반란군 수괴인 사이고는 그럴 상황도 아니었는데 자결합니다. 전쟁이 바로 Tom Cruise Watanabe Ken 주연의 영화 The Last Samurai 배경입니다. 한편, 일본 본토의 서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현재의 카코시마鹿児島 현인 사츠마薩摩 출신 사이고는 정한론征韓論으로 우리에게 악명이 높은데요, 카고시마 공항 정문 공원에 그의 동상이 우뚝 서서 우리를 반겨(?) 맞이하고 있습니다.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