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3일 일요일

2018.6.13 「ごぼう蕎麦」を作る美女の忘れられない記憶 ‘고보우 소바’를 차리는 미녀의 잊을 수 없는 기억

차분하게 내리기 시작한 초여름 빗줄기 같은 소박한 수필

 

ごぼう蕎麦」美女れられない記憶
고보우 소바 차리는 미녀의 잊을 없는 기억

って女子高生数年後
라고 중얼거리는 여고생의

紫原 明子 : エッセイスト 시하라 아키코 : 에세이스트

TOYOKEIZAI ONLINE 20180613


Y日記文末にはいつも……(イラストMasami Ushikubo
Y
일기 글끄트머리에는 언제나……(일러스트 : Masami Ushikubo)

『家族無計画』『りこんのこども』など家族に関する珠玉のエッセイを生み出してきたエッセイストの紫原明子さん。この連載で綴るのは、紫原さんが見てきたさまざまな家族の風景と、その記憶の中にある食べ物について。紆余曲折あった、でもどこにでもいる大人たちの過去、現在、そして未来を見つめる物語です。
가족 무계획” “사과의 아이 가족에 관한 주옥 같은 에세이를 만들어 에세이스트 시하라 아키코 . 연재로 글을 쓰는 시하라 상이 보아온 다양한 가족의 풍경과 기억 속에 있는 음식에 관해서. 우여곡절 있는 그러나 어디에나 있는 어른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응시하는 이야기입니다.


20年前のインターネット世界で
20
년전의 인터넷 세계로

「おかあさん、ごはんをつくってください」
엄마, 차려 주세요

私が最初にYと出会ったのは今から約20年前、高校生の頃のことだった。
내가 처음 Y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 , 고등학생 무렵의 일이었다.

出会ったといっても私たちはインターネットの中の友達で、彼女は私より1歳年下。ものすごい美人だという評判を聞いたことはあったけれど、実際に顔を見たことはなかった。
만났다고 해도 우리들은 인터넷 친구로, 그녀는 나보다 아래. 대단히 미인이라는 평판을 들은 적은 있지만, 실제로 얼굴을 적은 없었다.


紫原明子さんによる新連載、1回目です 시하라 아키코 상의 연재 1회째입니다.

当時はじわじわとPHSがポケベルにとって代わっていた頃で、当然スマホなんてものもなく、私たちはいつも自宅のパソコンを使ってチャットで話をした。
당시는 서서히 PHS* 삐삐를 대신하고 있던 무렵으로 당시 스마트폰 이란 것도 없어서, 우리들은 언제나 집의 PC 이용해 채팅으로 이야기했다.
* Personal Handy-phone System 우리나라의 씨티폰 비슷한 2G 이동통신 방식입니다. 우리가 90년대의 씨티폰에서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일본사람들도 흔히 ピッチ pitch라고 줄여 부르는 PHS에서 스마트폰과는 무언가다른 느낌이라고 합니다. - 옮긴이

私もYも、当時からインターネットに日記を公開していた。当時のインターネットではそういうのが流行っていたのだ。画数の多い漢字はつぶれてろくに読めないくらい、フォントのサイズを極限まで小さく指定するのが流行っていたりした。
나나 Y 당시부터 인터넷에 일기를 공개하고 있었다. 당시의 인터넷에는 그런 것이 유행하고 있었다. 화면의 많은 한자는 깨져서 제대로 읽을 수가 없을 정도, 폰트의 사이즈를 극한으로 작게 지정하는 유행하기도 했다.

だいたい、みんなそこに学校でのことや恋愛のこと、ちょっと背伸びして哲学的なことを知ったような口調で書くのだが、例によって小さな小さな字で記されたYの日記の文末にはいつも「おかあさん、ごはんをつくってください」という一言が添えられていた(Yには少し変わったところがあり、当時一時的に漢字を使わないで生活することを自分に課していたのだ)。
대체로 모두 그곳에서 학교 일이나 연애사, 조금 기를 써서 철학적인 것을 지적인 듯한 말투로 적었지만, 예에 따라 자디잔 글자로 적힌 Y 일기 말미에는 언제나 엄마, 차려 주세요라는 한마디가 붙어 있었다. (Y에게는 조금 이상한 점이 있어서 당시 일시적으로 한자를 쓰지 않고 생활하는 일을 스스로 하고 있었다.)

私の母は、たとえこちらがいらないと言っても朝昼晩と三食きっちり作ってくれる人で、世のお母さんというのも全員そういうものだとばかり思っていた。だからこの一文を見るたび、心が波立った。パソコン越しに、断片的にしか知らないYの日常。えないところでいったいどんなことがきているのだろう
우리 엄마는 예를 들어 이쪽에서 필요 없다고 해도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제대로 챙겨 주는 사람으로 세상의 엄마들이라고 하는 것도 전원 그렇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마디를 보았을 , 마음에 물결이 일었다. PC너머 단편적으로 밖에 알지 못하는 Y 일상. 보이지 않는 곳에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お母さん、ご飯作ってくれないの?”
엄마, 차려줄 거야?”

あるとき思い切って尋ねてみると、Yはあまり詳しいことは語ろうとせず、ただいろいろあって母親との折り合いが悪いので食事は自分で作っている、と話した。
언젠가 마음을 먹고 물어보았더니, Y 그다지 자세한 이야기 하지 않고, 그냥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엄마와 사이가 나빠 식사는 스스로 차린다고 했다.


ギョッとするほど大人びた美人がふとのぞかせる
소스라칠 만큼 어른스런 미인이 문득 엿보여주는 그늘


私たちがついにパソコンを介さず、実際に顔を合わせたのは、最初にネットで出会ってから、実に5年後のことだった。
우리들이 드디어 PC 사이에 두지 않고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것은 처음 인터넷 만남으로부터 실은 5 뒤의 일이었다.

私はその頃、結婚して一児の母となっていた。当時の配偶者の仕事の都合で、地元福岡から東京に移り住むことになり、新居を探すために一時的に東京に出てきていた。Yもまた地元の岐阜から大学進学にあたり東京に越してきており、私と子どもの泊まっていたホテルを訪ねてきてくれたのだ。
나는 무렵, 결혼을 해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당시 배우자의 업무 관계로 고향 후쿠오카에서 토오쿄오로 이주하게 되어, 새집을 찾기 위해 일시적으로 토오쿄오에 왔었다. Y 또한 고향인 키후岐阜에서 대학 진학에 맞춰 토오쿄오로 옮겨 있었고, 나와 아이가 머물던 호텔을 찾아와 것이다.

インターネットにのった文字はさまざまな情報を届けてくれるけれど、それでもやっぱり、生身の体を前に得る情報量にはとてもじゃないけどおよばないものだと、そのとき私はつくづく思わされたのだった。
인터넷에 올린 문자는 다양한 정보를 전달해 주지만, 그래도 역시나 실제 사람 앞에서 얻는 정보량에는 도저히는 아니지만 미치는 거라고 그때 나는 절실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初めて見るYは、ギョッとするほど大人びた美人だった。
처음 Y 소스칠 만큼 어른스런 미인이었다.

ささやくような声で喋り、少し動くと腰のあたりまである長い黒髪が、顔にさらりとかかる。不思議なことに、笑っていても、真顔でいても、いつも妙な影を感じさせる。他人のことを一方的にあれこれ邪推するのは決して褒められたことではないけれど、彼女の一挙一動に落ちる不穏な影に気付くたび、私はどうしてもあの日記の最後の一言「おかあさん、ごはんをつくってください」を思い出さずにはいられないのだった。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조금 움직이면 허리 근처까지의 머리가 얼굴에 매끈하게 걸린다. 이상하게도 웃거나 진지한 표정을 하거나 언제나 묘한 그늘을 느끼게 만든다. 남의 일을 일방적으로 이것 저것 잘못 추측하는 것은 결코 칭찬 받을 일은 아니지만,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비치는 평온하지 않은 그늘에 신경이 쓰일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일기의 마지막 한마디 엄마, 차려 줘요.’ 떠올리지 않을 없게 되었다.

その日以来、私とYは折を見てはお茶をしたり、食事をしたり、遊びに出かけたりするようになった。東京での暮らしが長くなるにつれ、Yのまわりをうっすらと包んでいる妙な闇も、少しずつ晴れていくような気がした。
이후, 나와 Y 때를 봐서는 차를 하거나, 식사를 하거나, 놀러 가거나 하게 되었다. 토오쿄오 생활이 길어지면서, Y 주변을 희미하게 감싸고 있는 묘한 어두움도 조금씩 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あるとき私たちの共通の友人が、Yの正式な恋人となった。共通の友人は博識で、ユーモアがあって、それでいて思慮深い好青年だ。このときを境にYは、一気に元気に、明るくなった。彼とならば、Yはきっと幸せになれるだろうと思った。
언젠가 우리들 공통의 친구가 Y 정식 연인이 되었다. 공통의 친구는 박식하고, 유머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려가 깊은 멋진 청년이다. 이때를 경계로 Y 단번에 건강하고 밝아졌다. 그와 라면 Y 확실히 행복해 걸로 생각했다. 

ほどなくして2人は結婚。彼のほうの仕事の都合で、2人は東京から離れた場所で暮らすことになった。同じ頃、こちらはこちらでいろいろあって、私は当時の配偶者と離婚することとなった。お互いが急に慌ただしくなってしまって、それからしばらくの間、Yとは自然と疎遠になってしまった。
얼마 되지 않아 사람은 결혼. 그의 업무 사정으로 사람은 토오쿄오에서 떨어진 곳에서 살게 되었다. 무렵 이쪽은 이쪽 대로 여러가지 일이 있어서, 나는 당시의 배우자와 이혼하게 되었다. 서로가 바쁘게 되어 버려서 동안 Y와는 자연히 소원해져 버렸다.


ごぼう蕎麦夕食
고보우 소바 저녁식사


そんなYが、いつの間にか生まれていた一人娘とともに久しぶりにわが家にやってきたのは、それから約2年後。新米シングルマザーとなっていた私は、紆余曲折を経て、人生ではじめての就職に成功。子育てと仕事の両立に悪戦苦闘している最中のことだった。
그런 Y 어느 샌가 태어나 하나와 함께 오랜만에 우리 집을 찾아 그로부터 2 . 신참 싱글 single mother 나는 우여곡절을 거쳐 인생에서 처음으로 취업에 성공. 아이 키우기와 일의 양립으로 악전고투를 하던 중의 일이었다.

Yの到着が夜遅かったこともあり、その日はお互いの近況を軽く話して、少しだけお酒を飲んですぐに眠った。翌朝、子どもたちを学校に送り出し、YYの娘を家に残して、私も仕事に。
Y 도착이 늦은 밤이기도 했고, 날은 서로의 경황을 가볍게 이야기하며 술을 조금 마시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Y Y 딸을 집에 남겨두고서 나도 일터로.

そして再び夜。クタクタになって家に戻ると、玄関を開けた瞬間に、干し椎茸を戻したいい香りが、玄関にまでぷーんと香った。ダイニングテーブルの上には、カセットコンロと土鍋がセットされている。
그리고 다시 , 피곤에 녹초 되어 집으로 돌아오자, 현관을 여는 순간에 말린 표고버섯을 다시 물에 불린 향이 현관에까지 후욱하고 났다. 식탁 위에는 부탄가스 버너와 옹기 냄비가 세팅되어 있다.

「わあ、これなに?」。私が尋ねると、Yが言った。
와아, 이거 뭐야?’ 내가 물었더니, Y 말했다.

ごぼう蕎麦。今日テレビですっごく美味しそうやったの
고보우 소바. 오늘 텔레비전에서 봐서 엄청 맞있겠더라고.’

湯気の立つ鍋の中を覗くと、醤油と干し椎茸のスープにお蕎麦、さらにその上に、リボン状にスライスされ、きつね色に素揚げされたごぼうが山のようにのっかっていた。それぞれの器によそって、七味唐辛子をかけて食べる。
수증기가 오르는 냄비 안을 힐끗 보니 쇼우유醤油 말린 표고버섯 육수에 소바, 다시 위에 리본 모양으로 슬라이스되어 키츠네 색으로 튀김옷 없이 튀긴 고보우가 산처럼 실려있었다. 각자의 그릇을 모아서 시치미 토우가라시를 쳐서 먹는다.*
*
식탁의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고보우소바ごぼう蕎麦 ごぼうgobou(=우엉) + 蕎麦soba(=메밀국수)인데요. 기사의 설명대로, 우엉을 연필을 깎듯이 슬라이스해서 (전문 용어(?)로는 친다 하죠?) 튀김 옷을 입히지 않고 튀겨(=素揚suage)해서 얹은 요리입니다. 여기서 키츠네きつね 여우fox 아니라, 보통 우동이나 육수에 소바에 얹어 주는 납작한 어묵을 말합니다. 우엉의 오독오독한 씹는 느낌에 쌉싸래한 그리고 튀김에서 배어 나오는 기름의 풍미가 표고버섯 육수와 어우러져 소바 맛을 부드럽게 합니다. 고추唐辛子tougarashi(가루) 말린 , , 7가지 부재료 七味shichimi 더한 七味唐辛子shichimitougarashi (통상은 七味shichimi또는 드물게 nanami 줄여 부르며, 부재료를 넣지 않은 양념을 一味ichimi라고 합니다) 이런 기름기를 잡아 주겠죠? - 옮긴이

「おいしい……」
맛있다……’

一口食べると、言葉と吐息が一緒に出た。気づけば長いこと子どもたちを食べさせることにばかり躍起になっていたYの作ってくれた温かい食事が、じんわりと体に染みる。
먹으니 말과 한숨이 동시에 나온다. 정신이 돌아오자 오래동안 아이를 먹이는 데만 기를 쓰고 있었다. Y 만들어 따뜻한 식사가 천천히 몸을 물들인다. 

仕事は肉体的にも精神的にもハードだったけれど、それでも家にじっとしているだけでは得られない新しい出会いと、離婚のあれこれで折れた自尊心を立てなおすのに十分な承認とを得ることができた。仕事を、つらい試練を乗り越えた後の、神様からのご褒美のように感じられることもあった。
일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됬지만hard, 그래도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만으로는 얻을 없는 새로운 만남과 이혼이라는 이런저런 일로 꺾인 자존심을 다시 세우는 충분한 승인을 얻을 있다. 일을, 괴로운 시련을 극복한 뒤의 신으로부터의 상과 같이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一方で、母親が急に働き出したことで、子どもたちにさみしい思いをさせているのではないか。仕事に義務感を上回るやりがいや充足を感じれば感じるほど、子どもたちへの後ろめたさがつのった。子どもも仕事も、どちらも生きるために欠かせないもので、大切にしたい。しかし体は1つしかなく、1日は24時間しかない。おまけに人間の体はどうやら寝ないともたない。この時期、2度ほど倒れて、救急車のお世話になって学んだことだ。
한편, 엄마가 급히 일을 하기 시작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쓸쓸한 생각이 들게 만들고 있는 아닐까? 일에서 의무감을 상회하는 보람이나 충족을 느끼면 느낄수록 아이에 대한 떳떳하지 못함이 심해졌다. 아이도 일도, 어느 것이나 살아가기 위해서 빠뜨릴 없는 것으로 소중히 하고 싶다. 그러나 몸은 하나밖에 없고, 하루는 24시간밖에 없다. 게다가 인간의 몸은 어쨌거나 자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요즘 정도 쓰러져서 구급차 신세가 되어 배운 거다.  

「ごぼうが少し焦げてしまったに、スープが苦くない?」
우엉이 조금 눌어붙어 버려서, 육수가 쓰지 않아?’

“〜に”、というのは彼女がよく使う地元の方言で“〜ので”、という意味らしい。照れたように笑いながらYが言う。
“~ni”, 라고 그녀가 자주 쓰는 고향 사투리로 “~라서のでnode”라는 의미인 같다. 수줍은 듯이 웃으면서 Y 얘기한다.

自分で作ったごぼう蕎麦を無邪気に口に運ぶYと、彼女の作った料理を食べる私。食べ物を食べるということは、明日も生きようとすること。食べ物を与えられるということは、どうか明日も生きてほしいという、誰かの切実な願いを受け止めることだ。
자신이 만든 고보우 소바를 천진난만하게 없이 입으로 가져가던 Y 그녀가 만든 요리를 먹는 . 먹을 것을 먹는다는 것은 내일도 살아가자고 하는 . 먹을 것을 준다는 제발 내일도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하는 누군가의 절실한 바램을 받아 들이는 것이다.


めが必要なときがある
체념이 필요할 때가 있다


ふと、私たちが初めて東京で会ったとき、まだようやく大学生になったばかりのYがあんなにも大人びて見えたのは、彼女が同世代よりも随分早く、諦めることを知っていたからなのかもしれないと思う。
문득 우리들이 처음 토오쿄오에서 만났을 , 드디어 대학생이 Y 그렇게도 어른스럽게 보인 것은 그녀가 세대보다도 상당히 일찍 포기한다는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物事には限界がある。どうにもならないときがある。諦めが必要なときがある。
사물에는 한계가 있다. 어쩔 없다라는 생각이 든다. 포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子どもの間は、私たちの側にいる大人がいつだって、見えないところで私たちの願いを叶え続けてくれる。私たちが生きることに希望を持ち続けていられるよう、諦めなくて済むよう、あれこれ手を尽くしてくれる。なかにはいくら年齢を重ねても、運良くずっと子どものままでいられる人もいる。けれども基本的には大半の人が、長い人生の中でいつかはそんな後ろ盾を失って、一人きりで立ち向かう。
아이들 사이는 우리들 편에 있는 어른이 언제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들의 바람을 계속해서 실현시켜 준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희망을 계속 가질 있도록, 포기하지 않고 끝내도록, 이런 저런 온갖 수단을 준다. 가운데는 아무리 나이를 더해가도 좋게 내내 아이들처럼 있을 있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태반의 사람들이 인생 가운데 언젠가는 후원자 잃고 홀로 맞선다.

陰日向から自分に希望を見せてくれる人を失った状態を孤独と呼び、孤独に屈せず生き続けることで、私たちは大人になる。そして一度大人になってしまうと、二度と子どもに戻ることはできない。
안팎으로 자신에게 희망을 보여주는 사람을 잃은 상태를 고독이라고 부르며, 고독에 도달하지 않고 계속 살아감으로써 우리들은 어른이 된다. 그리고 한번 어른이 되어 버리면, 번은 아이로 되돌아 수가 없다.

蕎麦の湯気の向こうに座るYは以前よりずっと屈託なく笑うようになっていたけれど、彼女がとっくに孤独を知っている大人である事実は覆りようのないことだった。けれども、だからこそこのときの私は、彼女に心底救われたように感じた。こちら側の世界だってそんなに悪くないよと、Yは、まだおぼつかない私の足元に、柔らかな光を照らしてくれたのだ。
소바 수증기 저편에 앉은 Y 이전보다 훨씬 천진하게 웃고 있게 되었지만, 그녀가 특히 고독을 알고 있는 어른인 사실을 뒤집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요즘의 나는 그녀에게 마음의 바닥을 구원받은 같은 느낌이다. 이쪽 세상이라고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Y 아직 불안한 나의 발끝에 부드러운 빛을 비춰준 거다.

 

조용히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몸이 마른 줄도 모르고 정원에 있는 나무와 잔디를 촉촉히 적셔준 기분입니다. 일상에 지쳐 쳐진 잎사귀에 생기와 삶의 의욕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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