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3일 일요일

2018.6.23 大ナマズ秀吉の天下を倒す…歴史を変えた大地震 큰 메기가 히데요시의 천하를 쓰러뜨리다…역사를 바꾼 대지진

지진이 난지 보름, 대체로 도시의 기능과 주민의 생활은 정상화되었다고는 합니다만

 

ナマズ秀吉天下歴史えた大地震
메기가 히데요시의 천하를 쓰러뜨리다역사를 바꾼 대지진

読売新聞編集委員、BS日テレ「深層NEWS」キャスター 丸山淳一
요미우리심붕 편집위원, BS닛테레 심층 NEWS’ 캐스터 마루야마 쥰이치

YOMIURI ONLINE 20180623 0720

 崩れ落ちた建物、ひび割れた道路、悲鳴を上げて逃げ惑う人々。大地震の発生直後ほど、人の無力を思い知らされる場面はない。豊臣政権が長続きしなかった要因の一つに、16世紀末に日本を襲った2つの大地震があった。最新の地震学を基にそのメカニズムと、歴史学との接点を探ってみると――
쓰러져 무너진 건물, 금이 도로, 미명을 올리며 어디로 도망갈지 당황해 하는 사람들. 대지진 발생 직후만큼, 사람들의 무력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드는 장면은 없다. 토요토미 정권이 오래가지 못한 원인의 하나로 16세기 말에 일본을 덮친 두개의 대지진이 있었다. 최신 지진학을 바탕으로 메커니즘과 역사학의 접점을 찾아 보면――.

地震古文書
지진의 수수께끼에 고문서로 도전하다


れで崩壊した寺院建物(18日午前、大阪府茨木市
강한 흔들림으로 붕괴된 사원 건물 (18 오전, 오오사카 이바라키 시에서)


 6月18日朝、大阪府の北部を中心とする最大震度6弱の地震があり、大きな被害が出た。千葉県の房総半島では「スロースリップ」によるとみられる地震が続いた。群馬県でも大阪の地震の前日、県内を震源とする地震で初めて震度5弱の揺れを観測した。
618 아침 오오사카 부의 북부를 중심으로 최대 진도 6 지진이 있어, 피해가 났다. 치바千葉 현의 보우소우房総 반도에서는 슬로우 슬립slow slip’ 의한 것으로 보이는 지진이 이어졌다. 군마群馬 현에서도 오오사카의 지진 전날 내를 진원으로 하는 지진으로 처음으로 5 흔들림을 관측했다.*
* ‘6이니 ‘5 이니 하는 표현은 지진의 진도를 표시하는 레벨인데요. 0, 1, 2, 3, 4, 5, 5, 6, 6, 7 10단계인데요, 1 미진微震, 2 경진軽震, 3 약진弱震, 4 중신中震, 5 강진強震, 6 열진烈震, 7 격진激震이라고 합니다. 이번 오오사카의 진도 6 가옥의 30% 미만이 붕괴되는 정도이며, 7 지난 2011 동일본대지진과 2016 쿠마모토 지진 등입니다. 한편, 진도震度 그대로 어느 지점에서 느끼는 충격의 강도로 지진의 크기를 나타내는 매그니튜드magnitude와는 단순 비교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100와트 전구와 30와트 전구의 에너지 차이가 매그니튜드라면, 100와트 전구 바로 아래서 느끼는 밝기와 5미터 떨어진 곳에서 느끼는 밝기의 차이가 진도라고 일본에서는 설명합니다. - 옮긴이

 「深層NEWS」でも大阪で地震があった日に、日本地震学会会長で名古屋大学教授の山岡耕春(こうしゅん)さんをお招きして、多発する地震についてじっくり解説してもらった。
深層shinsou NEWS’에서도 오오사카에서 지진이 있던 날에 일본지진학회 회장으로 나고야 대학 교수인 야마오카 코우슌 상을 초청해 많이 발생하는 지진에 대해 확실히 설명을 들었다.

 古文書などの記録から過去の大地震の時期や規模を推定し、最新の観測データと重ねあわせてその周期やメカニズムを探る研究が、徐々に成果を上げつつある。歴史家の磯田道史さんは『天災から日本史を読みなおす』(中公新書)で、最新の研究成果を分かりやすく紹介している。最新の地震学と歴史学は、今回の大阪の地震をどうとらえているのか。
고문서 등의 기록에서 과거의 대지진 시대나 규모를 추정해서 최신 관측 데이터를 더해 주기나 메커니즘을 찾는 연구가 서서히 성과를 계속 올린다. 역사가인 이소다 미치후미 상은 자연재해로부터 일본사를 다시 읽는다’(츄우코우신쇼우)에서 최신 연구 성과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최신 지진학과 역사학은 이번 오오사카 지진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을까?

「中央構造線」こす連動地震
중앙구조선Chuuoukousousen 일으키는 연동 지진


지진의 특징 : 내륙형(직하형) 활단층이 움직인다 VS 해구형 플레이트의 경계가 움직인다


地震発生のメカニズム(BS日テレ「深層NEWS」より
지진 발생의 메커니즘 (BS 닛테레 심층NEWS’에서)

 日本で起きる地震には、太平洋プレートの沈み込みによって起きる「海溝型地震」と、内陸部で活断層が動く「内陸型(直下型)地震」がある。今回の大阪の地震は内陸型地震で、震源の近くには有馬-高槻断層が走っている。1596年(文禄5年)に「慶長伏見地震」を引き起こしたとみられる断層だ。
일본에서 일어나는 지진에는 태평양 플레이트이 가라앉음으로써 일어나는 해구형 지진 내륙부에서 활성 단층이 움직이는 내륙형(직하형) 지진 있다. 이번 오오사카 지진은 내륙형 지진으로 진원 가까이에는 아리마有馬-타카사키高槻 단층이 지나고 있다. 1596(분로쿠5) 케이쵸우후시미慶長伏見 지진 일으킨 것으로 보이는 단층이다.

 この地震の規模を示すマグニチュード(M)は7.5前後と推定され、豊臣秀吉(1537~98)が隠居用の城として築城し、完成したばかりの伏見城天守が倒壊した。イエズス会宣教師がローマ教皇庁にあげた報告には、秀吉は愛児の秀頼(1593~1615)を抱いて庭に飛び出し、九死に一生を得たとある。加藤清正(1562~1611)が伏見城など被災地の復旧にあたり、その際に得た知識を熊本城の耐震化に役立てたとみられることは、以前にも紹介した。
지진의 규모를 표시하는 매그니튜드(M) 7.5 전후로 추정되며, 토요토미 히데요시(1537~98) 은거용 성으로 축성해서 완성한 후시미 텐슈天守* 쓰러져 무너졌다. 제수이트 선교사가 로마 교황청에 올린 보고서에는 히데요시는 사랑하는 자식 히데요리(1593~1615) 안고 뜰로 뛰어 나가 구사일생을 얻었다고 한다. 카토우 키요마사(14562~1611) 후시미 피해지 복구에 있어 얻은 지식을 쿠마모토 성의 내진화에 역할을 했다고 보이는 것은 이전에도 소개했다.
* 텐슈天守 일본 성에서 가장 높은 전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오오사카에 가서 돈을 내고 한번쯤 올라가 보게 되는 건물이 1939년에 재건축된 오오사카 성의 텐슈입니다. 한편 카토우 키요마사는 가등청정이라는 이름으로 악명 높은 무장武将이자 다이묘우大名 입니다. 함경도까지 북진을 하기도 했고 일본에는 없는 호랑이 사냥을 좋아했다고 하는 데요, 평양성을 함락한 소위 키리스탄Christian’ 다이묘우 소서행장코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비하면 점잖았다고도 합니다. 그의 거성居城 쿠마모토 성으로, 어떤 이는 오오사카 , 히메지 성과 함께 일본 3 성의 하나로 꼽습니다. – 옮긴이

 記録をたどると、この地震の1週間前から大分県の別府湾付近で慶長豊後地震、愛媛県で慶長伊予地震という推定M7.0以上の大地震が続いている。発生した時の年号は文禄なのに「慶長〇〇地震」と呼ばれるのは、短期間に大きな地震があまりに続いたため、直後に改元されたからだ。
기록을 더듬으면, 지진의 1주일 전부터 오오이타大分 현의 벱부別府 부근에서 케이쵸우분고우慶長豊後 지진, 에히메 현에서 케이쵸우이요慶長伊予 지진이라는 추정 M7.0 이상의 대지진이 이어지고 있다. 발생했을 당시의 연호는 분로쿠文禄*인데 케이쵸우慶長〇〇 지진이라고 불리는 것은, 단기간에 지진이 너무나 이어져 직후에 연호가 바뀌었다.
*
文禄 1593~1596, 慶長 1596~1615연간으로, 일본에서는 임진왜란을 분로쿠의 文禄Bunrokunoeki, 정유재란을 케이쵸우의 慶長Keichounoeki라고 합니다. eki 전쟁이라는 뜻입니다. – 옮긴이


日本最大断層「中央構造線」(BS日テレ「深層NEWS」より
일본 최대의 단층 추우오우 구조선’ (BS 닛테레 심층NEWS’에서)


 3つの地震の震央はいずれも日本最大の断層帯である中央構造線に近く、最初の地震が中央構造線を動かし、次々に直下型の地震を誘発する「連動地震」だった可能性が指摘されている。こうした連動が起きるなら、18日の大阪の地震の導火線は2016年4月に中央構造線の西端で起きた熊本地震なのではないか。中央構造線は群馬県下も走っており、17日の群馬の地震との関連を指摘する向きもある。
3 지진의 진앙은 어느 것이나 일본 최대의 단층대인 추우오우 구조선中央構造線 가까워, 최초의 지진이 추우오우 구조선을 움직이고, 이어서 직하형 지진을 유발하는 연동지진이었을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이런 연동이 일어난다면, 18 오오사카 지진의 도화선은 2016 4월에 추우오우 구조선의 서쪽 끝에서 일어난 쿠마모토 지진이 아닐까. 추우오우 구조선은 군마 밑도 지나고 있어, 17 군마 지진과의 관련성을 지적하는 움직임도 있다.

 だが、山岡さんは「中央構造線が導火線の役割を果たしたなら、熊本から近い九州北部や四国北部でも大きな地震が起きていたはず。一足飛びに大阪北部に伝播することはない」という。また「中央構造線は紀伊半島より東ではこれまでほとんど地震を起こしていない」。群馬地震との関連もないようだ
그러나 야마오카 상은 추우오우 구조선이 도화선의 역할을 했다면, 쿠마모토에서 가까운 큐우슈우 북부나 시코쿠四国 남부에서도 지진이 일어났을 . 발짝 뛰어 넘어 오오사카 북부로 전파될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 또한 추우오우 구조선은 키이紀伊 반도보다 동쪽에서는 지금까지 거의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 군마 지진과의 관련도 없는 같다.

 ただ、山岡さんは、西日本での中央構造線による連動地震のメカニズム自体は否定していない。四国北部などで今後、連動地震が起きる恐れは残る。
다만 야마오카 상은 일본에서의 중앙구조선에 의한 연쇄지진의 메커니즘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시코쿠 북부 등에서 향우 연동 지진이 일어날 염려는 남아 있다.

各地危険断層、「城ごと滅亡」大名
각지에서 위험한 단층, ‘ 마다 멸망 다이묘우도

 熊本地震では最大震度7の激しい揺れが2度あり、最初の地震(前震=M6.5)より、2日後の地震(本震=M7.3)の方が大きかった。熊本平野の下には日奈久断層と布田川断層があり、2度の震度7の震源は、いずれも2つの断層が近接している地点だった。一方の断層がずれて前震が起きた後、そのずれでもう一方の断層にゆがみが生じ、より大きな本震につながったといわれている。
쿠마모토 지진에서는 최대 진도 7 격렬한 흔들림이 있었고, 최초의 지진(전진前震 =M6.5)보다 이틀 뒤의 지진(본진本震 =M7.3) 쪽이 컸다. 쿠마모토 평야 아래에는 히나구日奈久 단층과 후타가와布田川 단층이 있어서 두번의 진도 7 진원은 어느 것이나 두개의 단층이 근접하고 있는 지점이었다. 하나의 단층이 스쳐 전진이 일어난 스침으로 하나의 단층에 일그러짐이 생겨 더욱 본진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マグニチュードは対数で示され、0.2大きくなると地震のエネルギーは2倍になるから、熊本地震の本震は前震の約16倍、今回の大阪の地震(M6.1)の約64倍という大きな地震だったことになる。
매그니튜드는 로그[対数=log - 옮긴이] 표시되어 0.2 커지면 지진의 에너지는 2배가 되기 때문에 쿠마모토 지진의 본진은 전진의 16, 이번 오오사카 지진 (M6.1) 64배라는 지진이었다는 된다.

 1586年1月(旧暦の天正13年11月)の夜に起きた天正地震は、熊本地震と同じタイプの地震だった、という見方がある。震源も地震の規模もよく分からず真偽は不明だが、内陸型地震にもかかわらず、日本海側の若狭湾、太平洋側の伊勢湾、さらには琵琶湖にも津波発生の記録もある。岐阜県の白川郷を支配していた戦国大名の内ヶ島氏は居城の帰雲城が山崩れの直撃を受け、一族が城もろとも滅亡した。この地震の2日前には前震、翌日には誘発地震と考えられる地震が発生したという(『天正大地震誌』)。
1586 1 (구력 텐쇼우 天正 1311) 밤에 일어난 텐쇼우 지진은 쿠마모토 지진과 같은 타이프의 지진이었다 라는 견해가 있다. 진원도 지진의 규모도 없어 진위는 불명이지만, 내륙형 지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동해日本海 측의 와카사若狭 , 태평양 측의 이세伊勢 , 다시 비와코우琵琶湖에도 지진파가 발생 기록도 있다. 기후岐阜 현의 시라카와고우白川郷 지배한 센코쿠다이묘우인 우치가시마씨는 거처인 카에리쿠모죠우帰雲城 산사태로 직격을 받아 일가가 성과 함께 멸망했다. 지진의 이틀 전에는 전진, 다음 날에는 유발지진으로 생각되는 지진이 발생했다고 한다(“텐쇼우 대지진지大地震誌”). 


大阪府付近断層(BS日テレ「深層NEWS」より
오오사카 부근의 주요 단층 (BS 닛테레 심층NEWS’에서)


 大阪平野にも何本もの活断層が複雑に走っている。今回の地震の震源付近で、より大きな地震が起きることはないのだろうか。山岡さんは「その可能性は5%程度だろう」と見ている。過去のデータを見ると、大きな地震の余震の中に、最初の地震より規模が大きな地震が混じる確率は全国的には20回に1回程度だからだ。
오오사카 평야에도 줄기의 활성 단층이 복잡하게 지나고 있다. 이번 지진의 진원 부근에는 더욱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야마오카 상은 가능성은 5% 정도일 이라고 보고 있다. 과거의 데이터를 보면 지진의 여진 안에 최초의 지진 보다 규모가 지진이 섞일 확률은 전국적으로는 20회에 1 정도 였기 때문이다.

 だが、余震は同じ震源では起きず、震源が近づくと最初の地震より大きく揺れる地域もある。気象庁が、しばらくの間、同じ程度の「規模」ではなく、「揺れ」に注意するよう呼びかけているのはこのためで、5%だからといって安心はできない。
그러나 여진은 같은 진원에서 일어나지 않고, 진원이 다가오면 처음 지진보다 크게 흔들리는 지역도 있다. 기상청이 당분간 같은 정도의 규모 아니라 흔들림 주의하도록 이야기하는 것은 때문으로 5%라고 해서 안심은 없다.

最大脅威「南海トラフ」4つの法則
최대의 위협 난카이南海 토라후trough’ 4개의 법칙

 では、海溝型地震との関連はどうだろうか。最も心配なのは、建物や資産の被害だけで170兆円、20年に及ぶ長期間の経済低迷も踏まえると最大で1410兆円もの被害が予想(土木学会の推計)される南海トラフ地震だ。
그러면 해구형지진과의 관련성은 어떨까? 가장 걱정인 것은 건물이나 자산의 피해만으로 170조엔, 20년에 미치는 장기간의 경제 침체도 근거로 하면 최대 1,410조엔이나 되는 피해가 예상되는 난카이 트러프 지진이다


과거 난카이 트러프의 거대 지진
1946 난카이 지진
1944
히가시 난카이 지진
1854
안세이 난카이 지진 // 난카이 토오카이 지진
1707
호우에이 지진
1605
케이쵸우 지진
1498
메이오우 지진
1361
쇼우헤이 지진


南海トラフで発生した巨大地震(南北朝以降=BS日テレ「深層NEWS」より
난카이 트러프에서 발생한 거대지진 (난포쿠쵸우 이후 = BS 닛테레 심층NEWS’에서)

 磯田さんによると、『日本書紀』にある天武天皇の時代からこれまでに、南海トラフ地震は9回起きているという。過去の記録からわかる法則は〈1〉約100年の周期で発生する〈2〉同時もしくは数年内に遠州灘から四国沖まで連動する〈3〉90年間より短い周期で2回起きたことは歴史上確認できない〈4〉記録が明確な南北朝時代以降、150年間以上起きなかったことはない――という4点。直近に起きたのは1944年(昭和19年)の東南海地震と1946年(昭和21年)の南海地震だから、〈3〉の法則通りなら、まだ20年は起きないことになる。しかし、その一方で「南海トラフで地震が起きる前には内陸型地震が増えてくる」と主張する専門家もいる。
이소다 상에 의하면 니호쇼키日本書紀 있는 텐무 텐노우天武天皇 시대부터 지금까지 난카이 트러프 지진은 9 일어났다고 한다. 과거의 기록에서 있는 법칙은 (1) 100 주기로 발생한다 (2) 당시 또는 수년 내에 엔슈우나다遠州灘에서 시코쿠오키四国沖*까지 연동한다 (3) 90년보다 짧은 주기로 일어난 것은 역사상 확인할 없다 (4) 기록이 정확한 남포쿠쵸우지다이南北朝時代 이후 150년간 이상 일어나지 않았던 적은 없다 --- 라는 4가지 . 가장 가깝게 일어난 것은 1944(쇼우와19) 히가시난카이 지진과 1946(쇼우와21) 난카이 지진이기 때문에 (3) 법칙처럼 아직 20년은 일어나지 않는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난카이 트러프에서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는 내륙형지진이 늘어나 온다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 엔슈우나다遠州灘 시즈오카 남쪽 가까운 바다, 시코쿠오키四国沖 그대로 시코쿠 남쪽 태평양의 가까운 바다입니다. - 옮긴이


巨大地震震源域「南海トラフ」(BS日テレ「深層NEWS」より
거대 지진의 심원역 난카이 트러프’(BS 닛테레 심층NEWS’에서)


 山岡さんは、今回の大阪の地震の震源は南海トラフの震源域から100キロ以上離れており、直接の引き金にはならないと見ている。ただ、「1995年(平成7年)の阪神・淡路大震災以降、内陸型地震が活動期に入っていることは確か」という。海溝型の地震は内陸型地震に影響するが、その逆はない。ただし、南海トラフでは70年前の地震で膨大なエネルギーが解放されたが、それによって内陸型地震が抑えられた50年を過ぎ、プレートに押されて内陸部が再び悲鳴をあげ始めている。18日の大阪の地震もその悲鳴のひとつということになる。
야마오카 상은 이번 오오사카 지진의 진원지를 난카이 트러프의 진원지에서 1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고, 직접적인 방아쇠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1995(헤이세이7) 한신阪神아와지淡路 대지진 이래 내륙형 지진이 활동기에 들어간 것은 확실이라고 한다. 해구형지진은 내륙형지진에 영향을 주지만, 거꾸로는 없다. 그러나 난카이 트러프에서는 70년전 지진으로 풍부한 에너지가 해방되었지만, 그에 의해 내륙형 지진을 맞이한 50년을 지나서 플레이트에 짓눌린 내륙부가 다시 비명을 올리기 시작하고 있다. 18 오오사카 지진도 비명의 하나라는 된다.

 過去の南海トラフ地震には「超巨大」と「巨大」があり、超巨大が何年ごとに来るかはまだよく分かっていない。最悪の事態も想定した備えが必要だ。
과거의 난카이 트러프 지지에는 초거대 거대 있어서, 초거대가 년마다 오는 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최악의 사태도 상정한 준비가 필요하다.

秀吉家康運命けたつの地震
히데요시와 이에야스의 운명을 가른 두개의 지진



坂本城城址から琵琶湖
사카모토죠우 성터에서 비와코우



天正大地震山内一豊がいた長浜城倒壊した(写真1983年復元された模擬天守)
텐쇼우 대지진으로 야마우치 카즈토요가 있던 나가하마 성이 무너졌다 (사진은 1983년에 복원된 모의 텐슈우

 宣教師ルイス・フロイス(1532~97)の記録によると、天正大地震が起きた時、秀吉は明智光秀(?~1582)の居城だった琵琶湖西岸の坂本城にいたが、震度5と推定される揺れに驚き、飛ぶように大坂に逃げ帰った。この時、秀吉は、小牧・長久手の戦いの雪辱を期して徳川家康(1543~1616)への総攻撃を計画し、大垣城(岐阜県)に兵糧倉まで建てて準備を進めていたが、大垣城は地震で倒壊・焼失した。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 Luís Fróis (1532~97) 기록에 의하면 텐쇼우 대지진이 일어났을 , 히데요시는 아케치 미치히데(?~1582) 거처로 성이었던 비와코우 서안의 사카모토坂本 성에 있었지만, 진도 5 추정되는 흔들림에 놀라 나는 오오사카로 도망쳐 돌아갔다. 히데요시는 코마키小牧나가쿠테長久手 싸움의 설욕을 기해서 토쿠카와 이에야스(1543~1616) 대한 총공격을 설계하고 오오가키大垣 (키후 ) 군량 창고 세우고 준비를 진행했지만, 오오가키 성은 지진으로 붕괴소실되었다.

 かつて秀吉の城下町だった琵琶湖東岸の長浜も大きな被害を受け、山内一豊(1545?~1605)が入っていた長浜城(滋賀県)も倒壊。一豊は対家康戦で先鋒を担うどころではなくなり、家康の総攻撃は中止された。
과거에 히데요시의 성하촌이었던 비와코 동안의 나가하마長浜 피해를 입어, 야마우치 카즈토요山内一豊(1545?~1605) 들어 있던 나가하마長浜 (시가 ) 붕괴. 카즈토요는 이에야스와의 싸움에서 선봉을 맡지는 않게 되어 이에야스의 총공격은 중지되었다.



 天正大地震の揺れを体験した秀吉は伏見城の普請に際し、「ふしみのふしん、なまつ大事にて」と記した書状を送り、ナマズ、すなわち地震対策を万全にせよと命じた。だが、それにもかかわらず慶長伏見地震で伏見城は倒壊した。
텐쇼우 대지진의 흔들림을 체험한 히데요시는 후시미죠우 보수 공사 ふしみのふしんなまつ大事fushimino fushin namatsu daijini’라고 적은 편지를 보내 나마즈[= 메기 옮긴이] , 지진 대책에 만전을 기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쬬우후시미 지진으로 후시미 성은 무너져 쓰러졌다.*
* ふしみのふしんなまつ大事 후시미 성의 의심스러움不審fushin, 나마츠[아마도 나마즈의 오기 또는 당시 고어일까요?] 소중히라는 뜻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중국에서도 그렇습니다만, 일본에서는 땅속의 메기가 지진을 일으킨다고 믿습니다. 비상 도로 표지판에는 메기가 그려져 있는데요, 전쟁, 자연 재해 긴급상황에서는 일반차량의 통행이 불가능합니다. 한편, 최근에는 우나기 메기를 개발했다고도 합니다만, 전통적으로 일본사람들은 메기를 입에 대지 않습니다. – 옮긴이

 琵琶湖のナマズに負けるものかと思ったのか、秀吉はさらに堅牢で豪華に伏見城を再建せよと命じ、再度の朝鮮出兵も強行した。度重なる地震で疲弊していた人心は秀吉から離れ、磯田さんは「地震後のかじ取りのまずさで豊臣家は滅亡した」と見る。一方の家康は天正地震でも領国に大きな被害を受けず、秀吉の総攻撃を免れた。慶長伏見地震の復旧・復興対策の先頭に立たずにすみ、力を温存できた。
비와코우의 메기에게 거냐는 생각이었을까, 히데요시는 다시 견고하고 호화롭게 후시미 성을 재건시키도록 명하고, 다시 조선 출병도 강행했다. 거듭되는 지진으로 피폐한 인심은 히데요시를 떠나고, 이소다 상은 지진 후의 지휘가 시원치 않아 토요토미 집안은 멸망했다 본다. 한편 이에야스는 텐쇼우 지진으로도 영지에 피해를 입지 않았고, 히데요시의 총공격을 면했다. 케이쵸우 후시미 지진의 복구부흥 대책의 선두에 서지 않고 힘을 온존해 왔다.

 2つの大地震は、歴史を変える地震でもあった。今後も地震は歴史にさまざまに作用していくだろう。阪神・淡路大震災以降の地震計の増設で、観測データは飛躍的に充実しつつある。古文書などを地道に読み解き、過去のデータを増やす研究も、今後、ますます重要になる。
개의 대지진은 역사를 바꿀 지진이기도 하다. 향후에도 지진은 역사에 다양하게 작용해 것이다. 한신아와지 대지진 이후 지진계의 증설로 관측 데이터는 비약적으로 충실해 있다. 고문서 등을 견실하게 읽어내고, 과거 데이터를 늘이는 연구도 향후 점점 중요해 진다.

 

지진을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실감이 나지는 않겠지만, 듣기만 해도 무섭죠? 일본에 무서운 ‘地震火事・おやじjishinkabinarikajioyaji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지진, 천둥, 화재만큼 무섭다는 얘긴데요, 필자가 끄트머리에 적었듯 도망 수도 없는 가지가 전통적으로 일본사람들에게는 가장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역경을 이겨내며 일본 사람들은 열도에서 30만년 간이나 살아 오고 있습니다.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