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MOND ONLINE 2017.7.19
定年の日を境に起こる「誰も名前を呼んでくれない」
정년(퇴직)일을 경계로 벌어지는 ‘누구도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
정년(퇴직)일을 경계로 벌어지는 ‘누구도 이름을 불러 주지 않아’
楠木 新:ビジネス書作家 쿠스노키 아라타 : 비즈니스 서적 작가
定年退職の直後に感じるのは、「現役時代は、いかに社会と関わりが持てていたか」ということだ。組織から切り離されたときから、人は「名前を呼ばれない」日々を生きることになる。60歳からを「黄金の15年」にするために、このリアリティショックを乗り越える必要がある。(ビジネス書作家 楠木 新)
정년 퇴직 직후에 느끼는 건, ‘현역(직) 시절은 어떻게 사회와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나’ 하는 거다. 조직으로부터 [끈이] 끊어져 떨어졌을 때부터, 사람들은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날들을 살아가게 된다. 60세부터를 ‘황금의 15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리얼리티 쇼크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비즈니스 서적 작가 쿠스노키 아라타)
정년 퇴직 직후에 느끼는 건, ‘현역(직) 시절은 어떻게 사회와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나’ 하는 거다. 조직으로부터 [끈이] 끊어져 떨어졌을 때부터, 사람들은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날들을 살아가게 된다. 60세부터를 ‘황금의 15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리얼리티 쇼크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비즈니스 서적 작가 쿠스노키 아라타)
「半年経つと立ち直れない」
‘반년 지나면 다시 설 수가 없다’
‘반년 지나면 다시 설 수가 없다’
もう10年近く前になるが、活力あふれるシニアの増加を目指すNPOからセミナー講師の依頼を受けたことがある。「中高年からライフワークを見つけた人たち」というタイトルで話をした。
벌써 10년 가까운 전이 되지만, 활력 넘치는 시니어의 증가를 노린 NPO부터 세미나 강사 의뢰를 받은 일이 있다. ‘중노년부터 라이프 워크를 찾은 사람들’이라는 타이틀로 이야기를 했다
벌써 10년 가까운 전이 되지만, 활력 넘치는 시니어의 증가를 노린 NPO부터 세미나 강사 의뢰를 받은 일이 있다. ‘중노년부터 라이프 워크를 찾은 사람들’이라는 타이틀로 이야기를 했다
セミナーが終了した時に、事務局の人たちと居酒屋で歓談の機会があった。その時に60代の男性がNPOに参加した理由を語りだした。
세미나가 종료했을 때, 사무국 사람들과 이자카야에서 환담 기회가 있었다. 그 때 60대 남성이 NPO에 참가한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세미나가 종료했을 때, 사무국 사람들과 이자카야에서 환담 기회가 있었다. 그 때 60대 남성이 NPO에 참가한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定年になって初めの1ヵ月程度は解放感に満たされたが、それ以降はやることがなくて本当に辛かった。働こうと思ってハローワークなどにも通ったが、履歴書を送っても面接までたどり着けない。家に引きこもりがちになって半年もするとテレビの前から立ち上がれなくなった」。そんな話だった。その後このNPOの存在を知って救われたという。
‘정년이 되어 처음 1개월 정도는 해방감이 가득해졌지만, 그 이후는 할 일이 없어서 정말로 괴로웠다. 일을 하자고 생각하고 하로와쿠* 등에도 다녔지만, 이력서를 보내도 면접까지 가지를 못한다. 그런 이야기였다. 그 다음 이 NPO의 존재를 알고 구제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 Hello Work. 후생노동성이 운영하는 취업지원 및 고용촉진 기관입니다 – 옮긴이
‘정년이 되어 처음 1개월 정도는 해방감이 가득해졌지만, 그 이후는 할 일이 없어서 정말로 괴로웠다. 일을 하자고 생각하고 하로와쿠* 등에도 다녔지만, 이력서를 보내도 면접까지 가지를 못한다. 그런 이야기였다. 그 다음 이 NPO의 존재를 알고 구제를 받았다는 이야기다.
* Hello Work. 후생노동성이 운영하는 취업지원 및 고용촉진 기관입니다 – 옮긴이
彼は「『何をするかは失業保険を受け取ってから考える』と話す同僚が多かったが、半年間何もしないことに耐えられない人が少なくないはずだ」と自らの体験をもとに語ってくれた。
그는 ‘”뭐를 할 지는 실업보험을 받으면서부터 생각한다” 라고 이야기하는 동료가 많았지만, 반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참을 수가 없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라고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해 줬다.
그는 ‘”뭐를 할 지는 실업보험을 받으면서부터 생각한다” 라고 이야기하는 동료가 많았지만, 반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참을 수가 없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라고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해 줬다.
また私が執筆の場にしているレンタルオフィスに訪れた会社員当時の先輩は、「この事務所には、どれくらい来ているの?」と聞いた。
또한 내가 집필 장소로 하고 있는 렌털 오피스를 찾은 회사원 시절의 선배는 ‘이 사무실에는 어느 정도 오나?’ 라고 물었다.
또한 내가 집필 장소로 하고 있는 렌털 오피스를 찾은 회사원 시절의 선배는 ‘이 사무실에는 어느 정도 오나?’ 라고 물었다.
「週に4、5日くらいですかね」と答えると、「それじゃ、生活のリズムがついていいなぁ」と彼はつぶやいた。
‘일주일에 4,5일 정도 일까요’ 라고 대답을 하니 ‘그러면, 생활 리듬이 붙었네.’ 라고 그가 중얼거렸다.
‘일주일에 4,5일 정도 일까요’ 라고 대답을 하니 ‘그러면, 생활 리듬이 붙었네.’ 라고 그가 중얼거렸다.
さらにその後、近くの喫茶店で話し込んだ時に、「生活のリズムをつけるのは大変ですか?」と私から尋ねてみると、「朝起きてやることがないと、朝食をとるとまた寝てしまう」という。「寝てしまった後は、外出する気分も失せてテレビを漫然と見ていることが多い。だから二度寝をしないように、できるだけ外出することを心がけている。図書館や百貨店、映画館などをぶらぶらしていることが多い」そうだ。
또 그 뒤, 가까운 찻집에서 이야기를 할 때 ‘생활리듬을 붙이는 건 큰일입니까?’라고 내가 물어 보니 ‘아침에 일어나 할 일이 없으면, 아침을 먹고는 다시 자버린다’고 한다. ‘자고 난 다음에는 외출할 기분도 없어져서 텔레비전을 멍하니 보는 일이 많다. 그래서 두 번 자는 일이 없도록, 될 수 있으면 외출하는 걸 늘 마음에 새겨 두고 있다. 도서관이나 백화점, 영화관 등을 어슬렁어슬렁 하고 있는 적이 많다’는 거다.
또 그 뒤, 가까운 찻집에서 이야기를 할 때 ‘생활리듬을 붙이는 건 큰일입니까?’라고 내가 물어 보니 ‘아침에 일어나 할 일이 없으면, 아침을 먹고는 다시 자버린다’고 한다. ‘자고 난 다음에는 외출할 기분도 없어져서 텔레비전을 멍하니 보는 일이 많다. 그래서 두 번 자는 일이 없도록, 될 수 있으면 외출하는 걸 늘 마음에 새겨 두고 있다. 도서관이나 백화점, 영화관 등을 어슬렁어슬렁 하고 있는 적이 많다’는 거다.
気心の知れた先輩なので本当のところを語ってくれたのだろう。私の事務所を訪れたのも何か自分にヒントになることはないかと思っていた、ということだった。
속속들이 잘 아는 선배니까 사실을 이야기해 줬을 거다. 내 사무실을 찾은 것도 뭔가 자신에게 힌트가 될 게 없을까 생각하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속속들이 잘 아는 선배니까 사실을 이야기해 줬을 거다. 내 사무실을 찾은 것도 뭔가 자신에게 힌트가 될 게 없을까 생각하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仕事も同僚もスケジュールもすべてなくなる
일도 동료도 스케줄도 전부 없어진다
일도 동료도 스케줄도 전부 없어진다
紹介したNPOの事務局で運営に携わっている人や、オフィスを訪れた先輩の定年後の困惑、戸惑いは私にも十分伝わってくる。
소개한 NPO 사무국에서 운영을 맡고 있는 사람이나 오피스를 찾아온 선배의 정년 후의 곤혹, 망설임은 내게도 충분히 전해져 온다.
소개한 NPO 사무국에서 운영을 맡고 있는 사람이나 오피스를 찾아온 선배의 정년 후의 곤혹, 망설임은 내게도 충분히 전해져 온다.
私は60歳で36年間勤めた生命保険会社を退職した。65歳まで働くという選択肢もあったが、「定年後」を自ら体験しながら執筆したいと思い、どこの組織にも属さずに過ごしている。
나는 60세에 36년간 일했던 생명보험회사*를 퇴직했다. 65세까지 일을 하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정년후定年後’를 스스로 체험하면서 집필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어느 조직에도 속하지 않고 보내고 있다.
* 쿠스노키 씨는 쿄오토오 대학 법학부를 졸업 후 JP(Japan Post)칸포 생명과 함께 일본의 양대 생명보험회사인 니혼세이메이日本生命保險 에서 인사, 노무, 기획, 회계 관련 일을 했습니다 – 옮긴이
나는 60세에 36년간 일했던 생명보험회사*를 퇴직했다. 65세까지 일을 하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정년후定年後’를 스스로 체험하면서 집필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어느 조직에도 속하지 않고 보내고 있다.
* 쿠스노키 씨는 쿄오토오 대학 법학부를 졸업 후 JP(Japan Post)칸포 생명과 함께 일본의 양대 생명보험회사인 니혼세이메이日本生命保險 에서 인사, 노무, 기획, 회계 관련 일을 했습니다 – 옮긴이
会社員のほぼすべてがそうであるように毎日通勤電車に揺られて職場に入り、そこで長時間働くのが日常だった。ところが定年の日を境に、満員電車に乗り込む必要はなくなり、机の前に座ることも、同僚と話すことも、なすべき仕事も何もかもなくなった。
회사원의 거의 모두가 그럴 것 듯이 매일 통근 전철에 시달려 직장에 들어와, 거기서 장시간 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정년 [퇴직]일을 경계로 만원 전철을 끼어 탈 필요는 없어지고, 책상 앞에 앉을 일도, 동료와 이야기할 일도, 해야 할 일도 아무것도 없어졌다.
회사원의 거의 모두가 그럴 것 듯이 매일 통근 전철에 시달려 직장에 들어와, 거기서 장시간 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정년 [퇴직]일을 경계로 만원 전철을 끼어 탈 필요는 없어지고, 책상 앞에 앉을 일도, 동료와 이야기할 일도, 해야 할 일도 아무것도 없어졌다.
私の場合は10年近く会社員と執筆活動の二足の草鞋を履いていたので、会社との距離は相当あると自分では思っていた。それでも会社を退職した当時の解放感は予想以上に大きなものだった。しばらくは原稿を書くために机に向かうことができなかったくらいだ。
나의 경우는 10년 가까이 회사원과 집필활동이라는 두 켤레의 짚신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와의 거리는 상당하다고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회사를 퇴직한 당시의 해방감은 예상 이상으로 큰 것이었다. 한동안은 원고를 쓰기 위해 책상을 향할 수 없었을 정도다.
나의 경우는 10년 가까이 회사원과 집필활동이라는 두 켤레의 짚신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회사와의 거리는 상당하다고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회사를 퇴직한 당시의 해방감은 예상 이상으로 큰 것이었다. 한동안은 원고를 쓰기 위해 책상을 향할 수 없었을 정도다.
そして退職して2~3週間くらいは「明日から会社に出勤せよ」と命じられても問題なく現役復帰できる状態だった。
그리고 퇴직을 해서 2~3주 정도는 ‘내일부터 회사에 출근하라’고 명을 받아도 문제가 없이 현직 복귀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리고 퇴직을 해서 2~3주 정도는 ‘내일부터 회사에 출근하라’고 명을 받아도 문제가 없이 현직 복귀가 가능한 상태였다.
ただ退職後、3週間余りが経過すると、だんだん曜日の感覚がなくなってきた。土曜日、日曜日はそれほどでもないが、平日の曜日が分かりにくい。先日出かけたセミナーは何曜日だったかなとか、映画を見たのが昨日だったか、一昨日だったかが明確でなくなってきた。
그러나 퇴직 후, 3주 남짓이 경과하자, 점점 요일 감각이 없어져 왔다. 토요일, 일요일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평일인 요일을 잘 알 수가 없다. 전날 나갔던 세미나가 무슨 요일이었는지 라든가, 영화를 보러 간 게 어제였던가, 그저께 였던가 명확하지 않게 됐다.
그러나 퇴직 후, 3주 남짓이 경과하자, 점점 요일 감각이 없어져 왔다. 토요일, 일요일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평일인 요일을 잘 알 수가 없다. 전날 나갔던 세미나가 무슨 요일이었는지 라든가, 영화를 보러 간 게 어제였던가, 그저께 였던가 명확하지 않게 됐다.
その原因の一つは手帳を頻繁に見なくなったことだ。日によっては一度も見ない。ほとんど頭の中で把握できるくらいしか予定がないからだ。
그 원인의 하나는 수첩을 자주 보지 않게 됐다는 거다. 날에 따라서는 한번도 보지 않는다. 거의 머리 속으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 밖에 예정이 없으니까.
그 원인의 하나는 수첩을 자주 보지 않게 됐다는 거다. 날에 따라서는 한번도 보지 않는다. 거의 머리 속으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 밖에 예정이 없으니까.
会社はメリハリを与えてくれる場所だった
회사는 풀어도 주고 조여도 줬던 장소였다
회사는 풀어도 주고 조여도 줬던 장소였다
退職から1ヵ月余り経過したゴールデンウィーク前の金曜日に繁華街に出た。夜の8時頃だったが、居酒屋、飲み屋、レストランは、どこもかしこも超満員だった。これからの連休を控えて仕事から解き放たれた様子の会社員であふれていた。そのときに「自分にはこのような週末はもうやってこない」ことに気がついた。
퇴직으로부터 1개월 남짓이 경과한 골든 위크 앞의 금요일에 번화가에 나갔다. 밤 여덟 시경이었지만, 이자카야, 술집, 레스토랑은 여기도 저기도 초만원이었다. 이제부터 연휴를 기다리며 일로부터 해방된 모습의 회사원으로 넘쳐났다. 그때 ‘자신에게는 이런 주말은 이제 찾아오지 않는다’는 데 정신이 들었다.
퇴직으로부터 1개월 남짓이 경과한 골든 위크 앞의 금요일에 번화가에 나갔다. 밤 여덟 시경이었지만, 이자카야, 술집, 레스토랑은 여기도 저기도 초만원이었다. 이제부터 연휴를 기다리며 일로부터 해방된 모습의 회사원으로 넘쳐났다. 그때 ‘자신에게는 이런 주말은 이제 찾아오지 않는다’는 데 정신이 들었다.
会社員は自分で工夫しなくても、会社が自然とオンとオフのスイッチを入れてくれる。始業、昼休み、終業の各々のチャイム、同僚と一緒のランチなどだ。
회사원은 스스로 공부하지 않아도, 회사가 자연스럽게 on/off 스위치를 넣어 준다. 업무 개시, 점심 휴게, 업무 종료라는 각각의 차임chime, 동료와 함께하는 점심 등이다.
회사원은 스스로 공부하지 않아도, 회사가 자연스럽게 on/off 스위치를 넣어 준다. 업무 개시, 점심 휴게, 업무 종료라는 각각의 차임chime, 동료와 함께하는 점심 등이다.
また毎週のチーム打ち合わせ、部内の会議、夜のちょっと一杯、周囲の仲間との談笑や雑談、上司からの無茶ぶりなども仕事がマンネリにならないように適当にちりばめられている。
또한 매주 팀 회의, 부내 회의, 밤에 딱 한잔, 주위의 동료와의 담소나 잡담, 상사로부터의 턱도 없는 소리 등도 일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적당히 삽입되어 있다.
또한 매주 팀 회의, 부내 회의, 밤에 딱 한잔, 주위의 동료와의 담소나 잡담, 상사로부터의 턱도 없는 소리 등도 일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적당히 삽입되어 있다.
面倒だった出張もなくなってみると、単調になりがちな仕事のスパイスだったと思えてきた。忘年会、歓迎会、新年会なども同様な機能を持っていると言えそうだ。
귀찮았던 출장도 없어지고 보면, 단조로워 질 수 밖에 없는 일의 양념spice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년회忘年会, 환영회, 신년회 등도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귀찮았던 출장도 없어지고 보면, 단조로워 질 수 밖에 없는 일의 양념spice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년회忘年会, 환영회, 신년회 등도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同時期に退職した学生時代の友人は、「今は一つのことをずっと考え込んでしまうが、会社では電話や上司の指示でいつも考え事が遮られる。これが精神衛生上とても良かった」と語っていたのが印象に残っている。
같은 시기에 퇴직한 학창 시절의 친구는 ‘지금은 하나의 일을 내내 깊이 생각하지만, 회사에서는 전화나 상사의 지시로 언제나 생각하는 일이 가로 막히지. 이게 정신건강精神衛生 상 아주 좋았어.’라고 얘기를 한 게 인상에 남아 있다.
같은 시기에 퇴직한 학창 시절의 친구는 ‘지금은 하나의 일을 내내 깊이 생각하지만, 회사에서는 전화나 상사의 지시로 언제나 생각하는 일이 가로 막히지. 이게 정신건강精神衛生 상 아주 좋았어.’라고 얘기를 한 게 인상에 남아 있다.
また彼は、若い人から年配者までが一緒に集まっている場所は、会社のほかにはないことに気がついたとも話していた。
또 그는 젊은이들로부터 나이가 든 사람들까지 함께 모여 있는 장소는 회사 밖에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도 했다.
또 그는 젊은이들로부터 나이가 든 사람들까지 함께 모여 있는 장소는 회사 밖에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도 했다.
満員電車とは無縁になって、会社からの拘束や仕事上の義務もなくなった解放感は依然として続いていたが、同時にそれらの拘束や義務の中に自分を支えていたものがあったことに気づき始めた。人は失ったものに目がいくようになる傾向があるのだろう。
만원 전철과는 연이 없어지고, 회사로부터의 구속이나 업무상의 의무도 없어진 해방감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동시에 이런 구속과 의무 가운데서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은 잃어버린 것에 눈길이 가게 되는 경향이 있을 거다.
만원 전철과는 연이 없어지고, 회사로부터의 구속이나 업무상의 의무도 없어진 해방감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동시에 이런 구속과 의무 가운데서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은 잃어버린 것에 눈길이 가게 되는 경향이 있을 거다.
名前を呼ばれるのは病院だけ
이름을 부르는 데는 병원뿐
이름을 부르는 데는 병원뿐
定年退職は誰にとっても大きな環境変化であるが、その変化をどういう点で感じるかは人によってさまざまだ。
정년 퇴직은 누구에게도 큰 환경 변화이지만, 그 변화를 어떤 점에서 느끼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
정년 퇴직은 누구에게도 큰 환경 변화이지만, 그 변화를 어떤 점에서 느끼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
営業をやっていた友人は「定年退職して受け取る年賀状が今までの3分の1になった」と嘆いていたが、会社の経費で飲めなくなったことが寂しいという人もいた。
영업을 해온 친구는 ‘정년퇴직을 하고 받는 연하장이 그때까지의 3분의 1이 되었다’라며 한숨을 쉬지만, 회사 경비로 술을 마실 수 없게 된 것이 허전하다는 사람도 있다.
영업을 해온 친구는 ‘정년퇴직을 하고 받는 연하장이 그때까지의 3분의 1이 되었다’라며 한숨을 쉬지만, 회사 경비로 술을 마실 수 없게 된 것이 허전하다는 사람도 있다.
私にとって一番印象的だったのは、誰からも名前を呼ばれないことだった。どこにも勤めず、無所属の時間を過ごしていると、自分の名前が全く呼ばれない。
내게 있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누구로부터도 이름이 불리지 않게 되었다는 거다. 어디에서도 일하지 않고, 무소속인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자신의 이름이 전혀 불리지 않는다.
내게 있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누구로부터도 이름이 불리지 않게 되었다는 거다. 어디에서도 일하지 않고, 무소속인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자신의 이름이 전혀 불리지 않는다.
社内では、「〇〇さん」、「〇〇調査役」などと当然のごとく声をかけてくれた。それがいかにありがたいことだったかは退職して分かった。
사내에서는 ‘** 씨(상)’, ‘** 조사역’ 등으로 당연스레 말을 걸어 줬다.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는 퇴직을 해서 알았다.
사내에서는 ‘** 씨(상)’, ‘** 조사역’ 등으로 당연스레 말을 걸어 줬다. 그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는 퇴직을 해서 알았다.
家族からは「おとうさん」と呼ばれ、電話、FAXも自分宛てのものは来ない。退職した当初は、引き継いだことや仕事の確認のため電話が入るかもしれないと思っていたがそれも全くなかった。
가족으로부터는 ‘아버지otoosan’라고 불리고, 전화, FAX도 자기 앞으로는 오지 않는다. 퇴직을 하고 바로는 인계한 업무의 확인을 위해 전화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전혀 없었다.
가족으로부터는 ‘아버지otoosan’라고 불리고, 전화, FAX도 자기 앞으로는 오지 않는다. 퇴직을 하고 바로는 인계한 업무의 확인을 위해 전화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전혀 없었다.
退職した年末に、病院で順番が来た時に看護婦さんに「〇〇さん、次が診察ですのでこちらでお待ちください」と声をかけられたのが唯一だった。これは笑い話ではなくて本当だ。
퇴직을 한 해의 연말에 병원에서 순번이 되었을 때에 간호사에게 ‘** 씨, 다음 진료니까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라고 말을 걸어 준 게 유일했다. 이건 우스개가 아니라 정말이다.
퇴직을 한 해의 연말에 병원에서 순번이 되었을 때에 간호사에게 ‘** 씨, 다음 진료니까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라고 말을 걸어 준 게 유일했다. 이건 우스개가 아니라 정말이다.
この話を同年代の定年退職者にすると、自分もそうだという人が多い。ある人は通りを歩いていて自分の名前を大きい声で呼ばれたので珍しいなと思って振り返ると、一緒に歩いていた息子の友達が声をかけたことに気がついたという。
이 이야기를 같은 세대의 정년퇴직자에게 하니, 자신도 그렇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사람은 길을 걷다가 자신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러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뒤를 돌아 보니, 같이 걸어가던 아들의 친구가 말을 걸었다는 걸 알아 차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같은 세대의 정년퇴직자에게 하니, 자신도 그렇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사람은 길을 걷다가 자신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러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뒤를 돌아 보니, 같이 걸어가던 아들의 친구가 말을 걸었다는 걸 알아 차렸다고 한다.
また別の退職者は、ハローワークの相談員と面接した時に自分の名前を何度も読んでくれたことがとても新鮮だったそうだ。
또 다른 퇴직자는 하로와쿠의 상담원과 면담을 했을 때 자신의 이름을 몇 번이나 읽어 준 게 매우 신선했단다.
또 다른 퇴직자는 하로와쿠의 상담원과 면담을 했을 때 자신의 이름을 몇 번이나 읽어 준 게 매우 신선했단다.
彼からその話を聞いた時に、「たしかcallingというのは、英語で職業という意味だったな」ということが頭に浮かんだ。
그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분명히 calling이라고 하는 것이 영어로 직업이라는 의미였지’라는 게 머리에 떠 올랐다.
그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분명히 calling이라고 하는 것이 영어로 직업이라는 의미였지’라는 게 머리에 떠 올랐다.
辞典を見ると、「職業」のほかに「 天職;(神の)お召し」という意味もある。会社勤めの時には意識しなかったが、定年後一人になれば、何らかの意味で、誰かに呼ばれなければやっていけない。
사전을 보면, ‘직업’ 외에 ‘천직: (신의) 부름’이라는 의미도 있다. 회사 근무 시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정년 뒤에 혼자가 되면, 무엇인가의 의미에서 누군가에게 이름이 불리지 않으면 살아 나갈 수가 없다.
사전을 보면, ‘직업’ 외에 ‘천직: (신의) 부름’이라는 의미도 있다. 회사 근무 시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정년 뒤에 혼자가 되면, 무엇인가의 의미에서 누군가에게 이름이 불리지 않으면 살아 나갈 수가 없다.
それは職業上であろうと、家族や地域の人やボランティア仲間、誰であっても構わない。名前を全く呼ばれないということは社会とつながっていないことを意味する。
그것은 직업상이야 라면, 가족이나 지역 사람들이나 자원봉사 동료, 누가 되었든지 상관없다. 이름이 전혀 불리지 않는 일은 회사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직업상이야 라면, 가족이나 지역 사람들이나 자원봉사 동료, 누가 되었든지 상관없다. 이름이 전혀 불리지 않는 일은 회사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私は、楠木新(くすのき・あらた)というペンネームがあり、編集者やセミナーの主催者とメールなどでやり取りしているので、何とかもっている。
나는, 쿠스노키 아라타(Kusunoki Arata)라는 펜 네임[본명은 통 찾을 수가 없습니다 – 옮긴이]이 있어, 편집자나 세미나 주최자와 메일 등으로 주고 받으니까 뭔가 가지고 있다.
나는, 쿠스노키 아라타(Kusunoki Arata)라는 펜 네임[본명은 통 찾을 수가 없습니다 – 옮긴이]이 있어, 편집자나 세미나 주최자와 메일 등으로 주고 받으니까 뭔가 가지고 있다.
そうでなければちょっと耐えられないかなと感じている。やはり人は一人では生きていけないのだ。
그렇지 않으면 좀 참을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역시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 갈 수 없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좀 참을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역시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 갈 수 없는 거다.
多くの定年退職者の話を聞いていると、定年はある日を境にやってくるが、人は一気には変われない。このギャップを埋めるためには、かなり前からの助走が必要だ。そういう意味では、「定年後」は50歳あたりから始まっているというのが実感だ。
많은 정년퇴지작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정년은 어느 날을 경계로 찾아 오지만, 사람은 한번에는 바뀌지 않는다. 이 갶gap을 메우기 위해서는, 상당히 전부터 도움닫기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는 ‘정년후Teinengo’는 50살 정도부터 시작했다는 것이 실감이다.
많은 정년퇴지작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정년은 어느 날을 경계로 찾아 오지만, 사람은 한번에는 바뀌지 않는다. 이 갶gap을 메우기 위해서는, 상당히 전부터 도움닫기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는 ‘정년후Teinengo’는 50살 정도부터 시작했다는 것이 실감이다.
この連載では、定年前の助走や定年後の社会とのつながり、居場所についても考えていきたい。
이 연재에서는 정년 전 도움닫기나 정년 후 회사와의 관계, 있을 곳에 대해서도 생각해 나가겠다.
이 연재에서는 정년 전 도움닫기나 정년 후 회사와의 관계, 있을 곳에 대해서도 생각해 나가겠다.
(ビジネス書作家 楠木 新 비즈니스 서적 작가 쿠즈나기 아라타)
맨 머리에 기사가 사미시이寂しい・淋しい하다고 했는데요 뭔 소리냐 하셨죠? 기사에서도 정년 후의 기분을 표현하는 말로 나옵니다만, 쓸쓸하다, 섭섭하다, 서운하다, 아쉽다, 허전하다 등의 의미입니다. 저만 그런가요? 아무튼, 이 단어를 쓸 때는 さびしいsabishii라고 쓰는데 실생활에서는 문자 그대로 읽지 않고 samishii라고 합니다. 심지어 寂しい・淋しい는 윈도우의 IME에서 samishii라고 타이핑을 해도 한자로 바뀝니다. 한편 ‘미안합니다’라는 すみませんsumimasen 도 흔히들 suimasen이라고 합니다. 물론 두 단어 다 sabishii나 sumimsen이라고 한다고 해도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습니다.
습관적으로 samishii나 suimasen이라고 하는 겁니다. 어제에 이어 자꾸만 일본어 수업이 되어가네요.
기사를 다 읽고 나니, 갑자기 정년 퇴직 후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 금전적인 것만큼이나 정신적으로 말이죠. 폼 나게 박차고 나갈 용기가 조금은 찔끔… 스스로 일을 하든, 조직에 들어가든 남과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큰일이네요.
7년 전에 퇴직한 어떤 선배는 생활 리듬을 위해 강남 한복판에 전망 좋은 70여평짜리 아파트에 두 식구가 살면서도 따로 사무실을 얻어 매일 전철을 타고 ‘출근’을 하는데요. 월간 비용이 35만원이나 하는 ‘사무실’이 겨우 한 평(!) 남짓이라서 남이 들어와 앉을 공간도 없다며 한번 찾아 가겠다고 하는 걸 한사코 말립니다. 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그 ‘골방’에서 그 고집쟁이 영감님은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쓴답니다. 이 양반이 이 기사를 읽으셔야… 읽어 봐야 마음 고쳐 잡술 리도 없겠지만요.
평생을 함께해 온 회사와 연이 끊어진 그 때도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도록… - 이 대목이 참 감탄스럽니다. 혹시 필자가 우리나라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김춘수의 시 ‘꽃’을 읽으신 걸까요? 이름 부름과 존재 그리고 관계의 형성… 존재의 본질은 그 이름을 부름으로써 비로소 인식되고 의미있는 존재가 되며, 관계가 형성된다던 밑줄 쫙~ 서한샘 선생의 암기용 시 해설 그대로입니다.
대책없이 맞는 정년 후에는 밥에 주려 죽을 수도 있겠지만, 정에 주려 죽기 십상일 듯. 오늘도 결론은 역시나 ‘준비합시다!’로군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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