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일본인답다고 평가받는 배우, 그러나 늘 재일동포라는 의혹이 함께했던 일본 영화계의 전설!
高倉健が一番、愛した日本刀とは?
타카쿠라 겐이 가장 좋아했던 일본도는?
타카쿠라 겐이 가장 좋아했던 일본도는?
(写真はイメージです 사진은 이미지입니다)
高倉健ほど日本刀が似合う俳優はいないだろう。事実、高倉健は日本刀をこよなく愛し、自身も数振り所持。刀匠の作品を親しい人に贈ることもあったという。高倉健と個人的な交流があった植草信和氏が健さんの日本刀愛に迫った。
타카쿠라 켄만큼 일본도가 어울리는 배우는 없을 것이다. 사실, 타카쿠라 켄은 일본도[nipponto로 옮겨야 하나 고민입니다 – 옮긴이]를 더할 수 없이 사랑해서, 자신도 몇 자루 소지. 칼 장인[이하 도장刀匠 – 옮긴이]의 작품을 친한 사람에게 선물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타카쿠라 켄과 개인적인 교류가 있는 우에쿠사 노무카즈 씨가 켄 상[健さん은 타카쿠라 켄의 애칭으로 이하 ‘켄 상’으로 옮깁니다 – 옮긴이]의 일본도 사랑에 다가섰다.
타카쿠라 켄만큼 일본도가 어울리는 배우는 없을 것이다. 사실, 타카쿠라 켄은 일본도[nipponto로 옮겨야 하나 고민입니다 – 옮긴이]를 더할 수 없이 사랑해서, 자신도 몇 자루 소지. 칼 장인[이하 도장刀匠 – 옮긴이]의 작품을 친한 사람에게 선물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타카쿠라 켄과 개인적인 교류가 있는 우에쿠사 노무카즈 씨가 켄 상[健さん은 타카쿠라 켄의 애칭으로 이하 ‘켄 상’으로 옮깁니다 – 옮긴이]의 일본도 사랑에 다가섰다.
僕が初めて健さんと会ったのは、1975年だった。当時僕は映画雑誌「キネマ旬報」の編集部に属していて、そこでの「新幹線大爆破」の座談会に健さんが出席してくれることになったのだ。僕は恐れ多くも司会を仰せつかった。
내가 처음으로 켄 상과 만난 것은 1975년이었다. 당시 나는 영화잡지 ‘키네마쥰보우キネマ旬報 *’ 의 편집부에 속해 있었고, 거기서 ‘신칸센 대폭파’의 좌담회에서 켄 상이 참석해 주었던 것이다. 나는 황송하게도 사회를 분부받았다.
* The Cinema Times, 1919년에 창간한 영화 잡지로 통상 キネ旬 kinejun이라고 불립니다. 순보입니다만 열흘 마다는 아니고 실제로는 매월 5월과 20일, 월 2회 발행되는 biweekly/fortnightly입니다 – 옮긴이
내가 처음으로 켄 상과 만난 것은 1975년이었다. 당시 나는 영화잡지 ‘키네마쥰보우キネマ旬報 *’ 의 편집부에 속해 있었고, 거기서 ‘신칸센 대폭파’의 좌담회에서 켄 상이 참석해 주었던 것이다. 나는 황송하게도 사회를 분부받았다.
* The Cinema Times, 1919년에 창간한 영화 잡지로 통상 キネ旬 kinejun이라고 불립니다. 순보입니다만 열흘 마다는 아니고 실제로는 매월 5월과 20일, 월 2회 발행되는 biweekly/fortnightly입니다 – 옮긴이
当日、喜び勇んで東京都練馬区大泉の東映撮影所に出向いた僕を、健さんは所内の自室に招いて、珈琲を淹れてくれた。大スターが目の前で、しかも手ずから淹れてくれたことに感激し緊張していたので、残念ながら味の方はさっぱりわからなかった。健さんの俳優仲間の八名信夫さんは、ドキュメンタリー映画「健さん」のなかで、「あんな不味い珈琲はなかったよ」と明言しているのだが……。
당일, 좋아 신바람이 나서 토오쿄오토 네리마쿠 오오이즈미의 토우에이* 촬영소로 향했던 나를 켄 상은 촬영소 안 자신의 방으로 불러, 커피를 끓여 주었다. 대 스타가 눈앞에, 그러나 손수 끓여준 데에 감격해서 긴장하고 있어서, 유감스럽게도 완전히 맛을 몰랐다. 켄 상의 배우 동료인 야나 노부오 씨는 타큐멘터리 영화 ‘켄 상’ 에서, ‘그런 맛없는 커피는 없었다고’ 라고 분명히 얘기하고 있지만…
* 1950년에 설립된 일본의 영화 제작·흥행·배급회사로, 은하철도999,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에반게리옹, 철도원 등을 제작했습니다 – 옮긴이
당일, 좋아 신바람이 나서 토오쿄오토 네리마쿠 오오이즈미의 토우에이* 촬영소로 향했던 나를 켄 상은 촬영소 안 자신의 방으로 불러, 커피를 끓여 주었다. 대 스타가 눈앞에, 그러나 손수 끓여준 데에 감격해서 긴장하고 있어서, 유감스럽게도 완전히 맛을 몰랐다. 켄 상의 배우 동료인 야나 노부오 씨는 타큐멘터리 영화 ‘켄 상’ 에서, ‘그런 맛없는 커피는 없었다고’ 라고 분명히 얘기하고 있지만…
* 1950년에 설립된 일본의 영화 제작·흥행·배급회사로, 은하철도999,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에반게리옹, 철도원 등을 제작했습니다 – 옮긴이
その後、82年に写真集『高倉健 望郷の詩』(芳賀書店)の編集を担当することになった。
그 뒤, 82년 사진집 ‘타카쿠라 켄 망향의 시’(하가쇼우텐)의 편집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 뒤, 82년 사진집 ‘타카쿠라 켄 망향의 시’(하가쇼우텐)의 편집을 담당하게 되었다.
健さんの魅力を刻印し、健さんが歩んできた半世紀が浮かび上がってくるような本にしたい、そんな取りとめのないことを考えて何度か打ち合わせをした。
켄 상의 매력을 각인하고, 켄 상이 밟아온 반세기가 떠올라 올 책을 만들고 싶다는, 그런 종잡을 수 없는 생각에 몇 번이나 회의를 했다.
켄 상의 매력을 각인하고, 켄 상이 밟아온 반세기가 떠올라 올 책을 만들고 싶다는, 그런 종잡을 수 없는 생각에 몇 번이나 회의를 했다.
当時の高倉プロモーションは東京都港区赤羽橋交差点側のガソリンスタンドの2階にあった。キネマ旬報社は神谷町の東京タワーの側だったので歩いて数分の距離にあり、打ち合わせには便利だった。打ち合わせが終わると数分の雑談が許され、それが嬉しかった。
당시 타카쿠라 프로모숀은 토우쿄우토 미나토쿠 아카바네바시 사거리*의 주유소의2층에 있었다. 키네마쥰보우사는 카미야죠의 토우쿄우 타워 쪽이어서 걸어서 몇 분 거리에 있고, 회의에는 편리했다. 회의가 끝나면 잡담이 허락되어 그게 즐거웠다.
* 실제로는 5거리입니다. 경험상 그리고 택시 운전사의 얘기로도, 자기 신호가 어떤 건지 한번에 알아 볼 수가 없어서 토우쿄우에서 가장 어려운 교차로입니다. 그래서 가장 안전한 교차로일지도… – 옮긴이
당시 타카쿠라 프로모숀은 토우쿄우토 미나토쿠 아카바네바시 사거리*의 주유소의2층에 있었다. 키네마쥰보우사는 카미야죠의 토우쿄우 타워 쪽이어서 걸어서 몇 분 거리에 있고, 회의에는 편리했다. 회의가 끝나면 잡담이 허락되어 그게 즐거웠다.
* 실제로는 5거리입니다. 경험상 그리고 택시 운전사의 얘기로도, 자기 신호가 어떤 건지 한번에 알아 볼 수가 없어서 토우쿄우에서 가장 어려운 교차로입니다. 그래서 가장 안전한 교차로일지도… – 옮긴이
それからかなり時間が経って出版された、野地秩嘉氏の力作『高倉健インタヴューズ』(小学館文庫)という本の中で語られている、健さんの日本刀についての考えを知り、得心したことがあった。
거기에서부터 상당히 시간이 지나고 출판된 노지 츠네요시 씨의 역작 ‘타카쿠라 켄 인터뷰즈’(쇼우각칸분코우)라는 책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켄 상의 일본도에 대한 생각을 알게 되어 잘 이해한 것이 있다.
거기에서부터 상당히 시간이 지나고 출판된 노지 츠네요시 씨의 역작 ‘타카쿠라 켄 인터뷰즈’(쇼우각칸분코우)라는 책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켄 상의 일본도에 대한 생각을 알게 되어 잘 이해한 것이 있다.
「日本刀は心が安らぐんですよ。夜中に引っ張り出して、すーっと抜き身にして、ぽんぽんって打ち粉を打って、眺めます。刃物ってのはただの道具なんですが、日本刀だけはそんな機能を通り越した美しさを持っているように思います」
‘일본도는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거예요. 밤중에 꺼내 쓰윽 칼집에서 꺼낸 채로 해서 칼 갈 때 쓰는 숫돌 가루를 팡팡 뿌리고 쳐다봅니다. 칼붙이라는 게 그냥 도구인 거지만, 일본도 만은 그런 기능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합니다.
‘일본도는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거예요. 밤중에 꺼내 쓰윽 칼집에서 꺼낸 채로 해서 칼 갈 때 쓰는 숫돌 가루를 팡팡 뿌리고 쳐다봅니다. 칼붙이라는 게 그냥 도구인 거지만, 일본도 만은 그런 기능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합니다.
夜中、ひとり日本刀を凝視している健さんの姿を思い浮かべながら、意に反して映画俳優を生業としてしまった高倉健、あるいは小田剛一(本名)という人間について考えてみると、何か腑に落ちるものがあった。
밤중에 혼자서 일본도를 응시하고 있는 켄 상의 모습을 떠올려 생각하면서, 생각에 반해서 영화배우를 생업으로 해버린 타카쿠라 켄, 즉 오다 고이치(본명)이란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보면, 뭔가 납득이 가는 게 있다.
밤중에 혼자서 일본도를 응시하고 있는 켄 상의 모습을 떠올려 생각하면서, 생각에 반해서 영화배우를 생업으로 해버린 타카쿠라 켄, 즉 오다 고이치(본명)이란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보면, 뭔가 납득이 가는 게 있다.
「普段どんな生活をしているか、どんな人と出会ってきたか、何に感動し何に感謝しているか、そうした役者個人の生き方が芝居に出ると思っている。俳優にとって大切なのは、造形と人生経験と本人の生き方。映画にはその生き方が出る」と語るストイックな健さんは、「機能を超越した美しさを持つ日本刀」の刀身に、己の俳優人生の内省を映し出し、それを見つめていたのではないだろうか、と。
‘보통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 지, 어떤 사람과 만나왔는지, 어떤데 감동해서 어떤 데 감사를 하고 있는지, 그런 배우 개인의 삶의 방식이 연기로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다. 배우로서 중요한 것은 조형과 인생 체험과 본인의 삶의 방식. 영화에는 그런 삶의 방식이 나온다’고 말하는 스토익stoic한 켄 상은 ‘기능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가진 일본도’의 칼 몸에 자신의 배우 인생의 내적 성찰을 비추어 내어, 그걸 주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보통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 지, 어떤 사람과 만나왔는지, 어떤데 감동해서 어떤 데 감사를 하고 있는지, 그런 배우 개인의 삶의 방식이 연기로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다. 배우로서 중요한 것은 조형과 인생 체험과 본인의 삶의 방식. 영화에는 그런 삶의 방식이 나온다’고 말하는 스토익stoic한 켄 상은 ‘기능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가진 일본도’의 칼 몸에 자신의 배우 인생의 내적 성찰을 비추어 내어, 그걸 주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また、日本刀について、「父が縁側に座って刀の手入れをしている後ろ姿が頼もしく、またとてつもなく好きだった。今にして思えば父と刀がオーバーラップして、日本人の魂を象徴する刀の魅力にとりつかれていたのかもしれない」とも語った健さんは、そこに愛してやまなかったご両親の在りし日と、故郷福岡の風景を見ていたのではないか。
또한, 일본도에 대해서 ‘아버지가 툇마루에 앉아 칼을 손질하고 있는 뒷모습이 믿음직하고, 또 엄청나게 좋았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아버지와 칼이 오버랩되어 일본인의 혼을 상징하는 칼의 매력에 홀려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던 켄 상은 거기에 사랑해 마지않았던 양친의 생전과 고향 후쿠오카의 풍경을 보고있었던 것은 아닐까.
또한, 일본도에 대해서 ‘아버지가 툇마루에 앉아 칼을 손질하고 있는 뒷모습이 믿음직하고, 또 엄청나게 좋았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아버지와 칼이 오버랩되어 일본인의 혼을 상징하는 칼의 매력에 홀려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던 켄 상은 거기에 사랑해 마지않았던 양친의 생전과 고향 후쿠오카의 풍경을 보고있었던 것은 아닐까.
そのように、日本刀を魂の研ぎどころとしていたらしい健さんは、いろいろな人に日本刀を贈っている。
그처럼, 일본도를 혼을 가는 곳으로 삼았던 듯한 켄 상은 여러 사람에게 일본도를 증정했다.
그처럼, 일본도를 혼을 가는 곳으로 삼았던 듯한 켄 상은 여러 사람에게 일본도를 증정했다.
もっともよく知られているのは、中国映画界のみならず、今や世界的な巨匠になったチャン・イーモウ監督へ贈ったエピソードだ。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중국 영화계만이 아니라, 지금은 세계적인 거장이 된 쟝 이머우 张艺谋 Zhang Yimou 감독에게 증정을 한 에피소드다.
「高倉さんとは1本の映画を撮っただけですが、彼が私に与えてくれた影響はとても大きなものです。高倉さんは私に日本刀も贈ってくださいました。彼から、刀は持ち主を守ってくれるものだと聞いています。その日本刀は今も私のオフィスの1メートルと離れていないところに置いてあります。高倉さんが私を守ってくれるような気がします」
‘타카쿠라 씨와는 한 편의 영화를 찍었을 뿐입니다만, 그가 내게 준 영향은 엄청나게 큰 것이었습니다. 타카쿠라 씨는 제게 일본도도 주셨어요. 그로부터 칼은 가지고 있는 주인을 지켜주는 물건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일본도는 지금도 제 사무실에 1미터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 두고 있습니다. 타카쿠라 씨가 저를 지켜준다는 기분입니다’
健さんはチャン・イーモウと、「単騎、千里を走る。」(2006年)という映画を作っている。
켄 상은 쟝 이머우와 ‘한 마리 말, 천리를 달리다’(2006년 [중국어 타이틀 千里走单骑 영어 타이틀 Riding Alone for Thousands of
Miles – 옮긴이] )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ふたりの交流はそれ以降も続き、08年、チャン・イーモウが北京オリンピックの開会式・閉会式の演出を引き受けたときに、健さんが自ら刀匠に依頼して打ってもらったひと振りの日本刀を、励ましの意味を込めて贈ったのだ。
두 사람의 교제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 2008년 쟝 이머우 감독이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폐회식을 연출을 인수했을 때 켄 상이 스스로 도장에게 의뢰해서 두드린 한 자루의 일본도를 격려의 의미를 담아 증정한 것이다.
두 사람의 교제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어, 2008년 쟝 이머우 감독이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폐회식을 연출을 인수했을 때 켄 상이 스스로 도장에게 의뢰해서 두드린 한 자루의 일본도를 격려의 의미를 담아 증정한 것이다.
そのとき健さんは、「日本刀は『守護と支持』を意味しています。言葉では何といっていいのかわからないけど、これが自分のあなたに対する気持ちです」とチャン・イーモウに語ったという。
그때 켄 상은 ‘일본도는 ‘수호와 지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뭐라고 하는 지 모르겠지만, 이게 저의 당신에 대한 기분입니다’라고 쟝 이머우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때 켄 상은 ‘일본도는 ‘수호와 지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뭐라고 하는 지 모르겠지만, 이게 저의 당신에 대한 기분입니다’라고 쟝 이머우에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長野県坂城町に「鉄の展示館」という施設がある。
나가노켄 사카키쵸우에 ‘철 전시관’이라는 시설이 있다.
나가노켄 사카키쵸우에 ‘철 전시관’이라는 시설이 있다.
県内でただひとりの人間国宝だった宮入行平刀匠が亡くなったとき、次男の小左衛門行平氏はその作品の多くを町に寄付して、父の刀を鑑賞できるようにした。それを受けて町が造った施設が「鉄の展示館」だ。
(나가노) 현내 단 한사람의 인간문화재였던 미야이리 유키히라 도장이 죽었을 때, 차남 코자에몬 유키히라 씨는 그 작품 많은 수를 초우町*에 기부해서, 아버지의 칼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그걸 받은 쵸우가 만든 시설이 ‘철 전시관’이다.
* 町도 영어로는 town으로 쓰는데, 5만명이 넘으면 시로 승격하며 우리나라의 읍/면에 상당하는 행정단위입니다 - 옮긴이
(나가노) 현내 단 한사람의 인간문화재였던 미야이리 유키히라 도장이 죽었을 때, 차남 코자에몬 유키히라 씨는 그 작품 많은 수를 초우町*에 기부해서, 아버지의 칼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그걸 받은 쵸우가 만든 시설이 ‘철 전시관’이다.
* 町도 영어로는 town으로 쓰는데, 5만명이 넘으면 시로 승격하며 우리나라의 읍/면에 상당하는 행정단위입니다 - 옮긴이
健さんと宮入小左衛門行平刀匠は日本刀をとおして深い交流があり、健さんの遺族が同町に、彼が所蔵していた刀剣類を寄贈した。寄贈品は安土桃山時代の名工堀川國廣作の脇差や、宮入小左衛門行平作の短刀など、刀剣類8点と刀掛け、日本刀専門書籍類だった。
켄 상과 미야이리 코자에몬 유키히라 도장은 일본도를 통해서 깊은 교류가 있어, 켄 상의 유족이 같은 쵸우에 그가 소장했던 도검류를 기증했다. 기증품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명공 호리카와 쿠니히로 작인 호신용 단검wakizashi와 미야이리 코자에몬 유키히라 작인 단도 등, 도검류 8점과 칼걸이, 일본도 전문서적류 였다.
* 이견도 있으나 대체로 오다 노부나가가 집권한1573부터,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집권기를 거쳐, 토쿠카와 이에야스가 에도바쿠후를 연 1603년까지로, 일본의 통일, 조선 침략 등 역사적 대전환기였으며, 한편으로는 무역으로 국가의 부가 축적되고 문화가 융성해진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 옮긴이
켄 상과 미야이리 코자에몬 유키히라 도장은 일본도를 통해서 깊은 교류가 있어, 켄 상의 유족이 같은 쵸우에 그가 소장했던 도검류를 기증했다. 기증품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명공 호리카와 쿠니히로 작인 호신용 단검wakizashi와 미야이리 코자에몬 유키히라 작인 단도 등, 도검류 8점과 칼걸이, 일본도 전문서적류 였다.
* 이견도 있으나 대체로 오다 노부나가가 집권한1573부터,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집권기를 거쳐, 토쿠카와 이에야스가 에도바쿠후를 연 1603년까지로, 일본의 통일, 조선 침략 등 역사적 대전환기였으며, 한편으로는 무역으로 국가의 부가 축적되고 문화가 융성해진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 옮긴이
同館では、健さんが亡くなった翌年の15年9月に「高倉健さんからの贈りもの(日本刀)」という展示会を開催、多くの人が詰めかけたという。
이 전시관에는 켄 상이 죽고 다음해인 2015년 9월에 ‘타카쿠라 켄 상으로부터의 증정품(일본도)’라는 전시회를 개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이 전시관에는 켄 상이 죽고 다음해인 2015년 9월에 ‘타카쿠라 켄 상으로부터의 증정품(일본도)’라는 전시회를 개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小左衛門行平氏は、「高倉さんは仕事の選択や人との関わりなど、“縁”をとても大切にしていたように見受けられた。毎年欠かしたことのない善光寺参りの道中でもあり、多少なりとも縁のあるこの地で遺愛の品の公開を喜んでくださっていると思う」と語る。
코자에몬 유키히라 씨는 ‘타카쿠라 씨는 일의 선택과 사람에 상관없이 ‘연’을 매우 중요하게 한 듯 보고 판단하셨다. 매년 빠짐 없이 젠코우지[642년에 창건된 일본 3대 사찰의 하나로 나가노켄에 있습니다 – 옮긴이] 참배 길에 있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연이 있는 곳에서 고인이 생전에 아끼던 것들이 공개되는 것을 즐거워해 주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코자에몬 유키히라 씨는 ‘타카쿠라 씨는 일의 선택과 사람에 상관없이 ‘연’을 매우 중요하게 한 듯 보고 판단하셨다. 매년 빠짐 없이 젠코우지[642년에 창건된 일본 3대 사찰의 하나로 나가노켄에 있습니다 – 옮긴이] 참배 길에 있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연이 있는 곳에서 고인이 생전에 아끼던 것들이 공개되는 것을 즐거워해 주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多数寄せられたリクエストに応えて、同館は16年4月にも「高倉健と宮入小左衛門行平の絆」展を開催している。映画の中では、「日本侠客伝」で初めて日本刀で悪親分を斬り捨てた健さんはその後、数え切れないほど人を殺めた。そのなかには、「網走番外地」シリーズ、「昭和残侠伝」シリーズなど、健さん扮する橘真一、花田秀次郎ら主人公が、日本刀と寄り添うように描かれた名作も多い。
모여든 다수의 리퀘스트에 응해서 이 전시관은 2016년 4월에도 ‘타카투라 켄과 미야이리 코자에몬 유키히라의 키즈나絆*’전시를 개최했다. 영화 가운데는 ‘일본협객전’으로 시작해서 일본도로 나쁜 두목oyabun을 베어버린 켄 상은 그 뒤, 이루 셀 수 없는 사람들을 죽였다. 그 가운데는 ‘아바시리반가이치’ 시리즈, ‘쇼우와잔쿄우덴’시리즈 등, 켄 상이 역할을 맡은 타치바나 신이치, 하나다 히데지로우 등 주인공이 일본도에 밀착한 듯이 그려진 명작도 많다.
* 絆는 영문으로도 kizuna로 쓸 만큼 매우 일본적인 정서입니다만, 간단하게는 인연, 정리 등으로 옮길 수 있겠습니다 – 옮긴이
모여든 다수의 리퀘스트에 응해서 이 전시관은 2016년 4월에도 ‘타카투라 켄과 미야이리 코자에몬 유키히라의 키즈나絆*’전시를 개최했다. 영화 가운데는 ‘일본협객전’으로 시작해서 일본도로 나쁜 두목oyabun을 베어버린 켄 상은 그 뒤, 이루 셀 수 없는 사람들을 죽였다. 그 가운데는 ‘아바시리반가이치’ 시리즈, ‘쇼우와잔쿄우덴’시리즈 등, 켄 상이 역할을 맡은 타치바나 신이치, 하나다 히데지로우 등 주인공이 일본도에 밀착한 듯이 그려진 명작도 많다.
* 絆는 영문으로도 kizuna로 쓸 만큼 매우 일본적인 정서입니다만, 간단하게는 인연, 정리 등으로 옮길 수 있겠습니다 – 옮긴이
日本刀がもっとも似合うスターだった健さんの日本刀に対する思いのなかには、劇中で心ならずも日本刀(白鞘も多い)で斬り殺した悪役たちへの鎮魂の意味もあったのではないか。
일본도가 가장 어울리는 스타였던 켄 상의 일본도에 대한 생각 가운데는 극중에서 마지못해 일본도(가공하지 않은 나무로 만든 칼도 많다)로 베어 죽인 악역에 대한 진혼의 의미도 있는 건 아닐까.
일본도가 가장 어울리는 스타였던 켄 상의 일본도에 대한 생각 가운데는 극중에서 마지못해 일본도(가공하지 않은 나무로 만든 칼도 많다)로 베어 죽인 악역에 대한 진혼의 의미도 있는 건 아닐까.
そんな想念を抱かせる、「健さんと日本刀」なのである。
그런 상념을 담은 ‘켄 상과 일본도’인 겁니다.
그런 상념을 담은 ‘켄 상과 일본도’인 겁니다.
타카쿠라 켄 씨가
누구시냐 하면, 바로
아래 사진
철도원popoya에서
사토우 오토마츠역을 연기한
일본을 대표하는
전설의 명배우입니다. 아사다
지로의 단편을
극화한 1999년의 이
영화에서 후배인
스기우라 센지杉浦仙次가 오토마츠를
오토상乙さん이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아버지otou와 같은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읽었습니다. 센지의 아들은 같은 철도 회사에 사무직으로 입사를 할 만큼 중년에 들어선 그런 센지를 오토상은 센쨩仙ちゃん이라고 부릅니다. 포스force + 의리
+ 인정 = 켄
상! 1931년
생으로 철도원은
찍을 때가
60대
후반으로 온화한
인상을 보여주지만
180cm의
장신에 근육질로
소시적에는 날카로운
눈매의 액션
배우였습니다. 그 시절 역할은 역시나 거의 대부분이 야쿠자에 가물에 콩 나듯 형사였습니다. 형사역은 1989년 영화 Black Rain이 백미죠? 아메리칸 캅cop 마이클 더글러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 같으면 때려친다’고 할 일본 경찰공무원… 야근 중에 자기 책상에서 소바를 먹다가 마이클 더글러스에게 들켜 궁상맞은 얼굴, 집으로 찾아온 그에게 닭장 같은 집을 공개할 때의 겸연쩍어 하는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야쿠자 본거지로 쳐 들어 가는 마츠모토 경장警部補.
철도원 아래 두
장의 사진이
바로 기사에
등장하는 아바시리반가이치網走番外地와 쇼와잔쿄우덴昭和残侠伝의 DVD와 BD case인데요. 기사
내용이 딱
와 닿는
모습입니다.
2014년 11월 림프종으로 사망한 뒤 이 레전드에 대한 추모의 분위기는 생전의 광고를 사후에도 몇 달간 계속해서 내보낼 정도였습니다. 생전에 형무소(일본에서는 교도소를 아직도 형무소라고 부릅니다)의 1일 소장으로 재소자들에게 짤막한 인사말을 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왔는데요, 80이 넘은 그가 뭔가 거창한 얘기를 할 것으로 기대한 것과 달리, 본인보다 형무소에 많이 들어간 사람은 없다.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가져라 라고 짤막한 ‘훈시’였습니다.
재일동포설에 대해서 늘 과묵함을 트레이드마크로 했던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 기사가 그의 질문에 대한 켄 상의 답변이 아닐까합니다. 그런데, 씁쓸하지만, 일본 극우파 중에 재일동포가 끼어 있는 것 때문에, 재일동포 출신의 자기부정이라고 삐딱하게 보는 사람도 있기는 합니다. 그러고 보니 혹시 제주 고씨 고 창건씨신가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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