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시작하면서, 좋은 윗사람의 책임을 생각하게 하는 기사 한 꼭지를 전해 드립니다.
DIAMOND ONLINE 2017.4.14
良い上司になろうとするほど部下がますますダメになる理由
좋은 상사가 되려고 하면 할수록 부하가 점점 불량이 되는 이유
좋은 상사가 되려고 하면 할수록 부하가 점점 불량이 되는 이유
新年度が始まって新入社員も入り、人事異動があった会社も多いだろう。「初めて部下を持つ」という人も多いかもしれない。そこで、多くの人は「良い上司」でありたいと思うことだろう。しかし、もしかしたら、多くの人が描く「良い上司」とは、部下の将来にとっては「最低最悪の上司」なのかもしれない。改めて「良い上司」について考えてみたい。(株式会社識学代表取締役社長、組織コンサルタント 安藤広大)
신년도가 시작되고 신입사원이 들어오고, 인사이동이 있었던 회사가 많을 것이다. ‘처음으로 부하가 생겼다’ 라는 사람도 많을지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좋은 상사’이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는 ‘좋은 상사’란 부하의 장래에 대해서는 ‘최하최악의 상사’일 지도 모른다. 우선 ‘좋은 상사’에 대해서 생각해 봤으면 한다.
(주식회사 식자 대표이사 사장 조직 컨설턴트 안도 코우다이)
신년도가 시작되고 신입사원이 들어오고, 인사이동이 있었던 회사가 많을 것이다. ‘처음으로 부하가 생겼다’ 라는 사람도 많을지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좋은 상사’이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는 ‘좋은 상사’란 부하의 장래에 대해서는 ‘최하최악의 상사’일 지도 모른다. 우선 ‘좋은 상사’에 대해서 생각해 봤으면 한다.
(주식회사 식자 대표이사 사장 조직 컨설턴트 안도 코우다이)
「良い」上司像は「最低の上司」かもしれない
‘좋은’ 상사 모습은 ‘최하의 상사’일지도 모른다
‘좋은’ 상사 모습은 ‘최하의 상사’일지도 모른다
・「無礼講」を許すのはダメ上司 ‘야자타임’을 허락하면 불량상사
これまで、私がダイヤモンド・オンラインに寄稿してきた記事の内容だ。でも、一般的に「良い」上司とされているのは、これらとは真逆の上司像かもしれない。例えば、下記のような上司像だ。
지금까지, 내가 다이아몬도 온라인에 기고해온 기사의 내용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좋은’ 상사라고 얘기하는 것은 이것과는 정반대의 상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상사의 모습이다.
지금까지, 내가 다이아몬도 온라인에 기고해온 기사의 내용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좋은’ 상사라고 얘기하는 것은 이것과는 정반대의 상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상사의 모습이다.
・部下の「頑張る姿」を褒めてくれる「良い」上司
부하의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칭찬해주는 ‘좋은’ 상사
부하의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칭찬해주는 ‘좋은’ 상사
・新入社員に「頑張る理由」を与えてくれる「良い」上司
신입사원에게 ‘열심히 노력해야하는 이유’를 부여해 주는 ‘좋은’상사
신입사원에게 ‘열심히 노력해야하는 이유’를 부여해 주는 ‘좋은’상사
・たまには「無礼講」を許してくれる懐の深い「良い」上司
때로는 ‘야자타임*’을 승낙해 주는 가슴속 깊은 ‘좋은’ 상사
* 無礼講bureikou의 원래 뜻은 신분과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위아래 없이 터 놓고 즐기는 술자리입니다 – 옮긴이
때로는 ‘야자타임*’을 승낙해 주는 가슴속 깊은 ‘좋은’ 상사
* 無礼講bureikou의 원래 뜻은 신분과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위아래 없이 터 놓고 즐기는 술자리입니다 – 옮긴이
どうだろう。あまり、違和感を持たないのではないだろうか。実際、私がお会いする経営者、管理者の中にはこのような「良い」上司像を持つ方々も少なくない。
어떠신지. 그다지, 위화감이 없지요? 실제, 내가 만나는 경영자, 관리자 가운데에는 이런 ‘좋은’ 상사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다
어떠신지. 그다지, 위화감이 없지요? 실제, 내가 만나는 경영자, 관리자 가운데에는 이런 ‘좋은’ 상사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다
しかし、このような上司が本当に「良い上司」と言えるのだろうか。結論は、これまで書いてきたように良い上司であるはずがない。部下の未来を奪う「最低の上司」であるというのが現実だ
그러나, 이런 상사가 정말로 ‘좋은 상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론은 지금까지 써온 대로 좋은 상사일 리가 없다. 부하의 미래를 빼앗는 ‘최하의 상사’라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런 상사가 정말로 ‘좋은 상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론은 지금까지 써온 대로 좋은 상사일 리가 없다. 부하의 미래를 빼앗는 ‘최하의 상사’라는 것이 현실이다.
上司は部下より遠く」を見るべき
상사는 부하보다
‘멀리’ 봐야한다
そもそも上司と部下では、組織ピラミッドの中での置かれている位置=高さが違う。当然ながら、上司は部下より常に高い位置に配置されている。高い位置に置かれているのだから、上司は常に部下より遠くを見なければいけないという責任がある。ここでいう「遠く」は距離ではなく、「時間」を表すものだ。組織において、上位、つまり高い位置に配置されている人間は、低い位置に配置されている人間より「遠い未来」を見て物事を判断しないといけないのである。
원래 상사와 부하에는 조직 피라미드 가운데에 놓여 있는 위치 = 높이가 다르다. 당연하지만 상사는 부하보다 늘 높은 위치에 배치되어 있다. 높은 위치에 놓여있으므로, 상사는 늘 부하보다 멀리를 보지 않으면 안되는 책임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멀리’는 거리가 아니라 ‘시간’을 나타내는 것이다. 조직에 있어 상위 결국 높은 위치에 배치되어 있는 인간은 낮은 위치에 배치되어 있는 인간보다 ‘먼 미래’를 보고 사물을 판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物事の良し悪しの判断は、時間軸をどこに置くかによって変わってくる。子どもの頃の怖かった先生がわかりやすい例だろう。子どもの頃は、本当に怖くて嫌だった先生に、大人になった今、とても感謝しているというのはよく聞く話だ。その時、本当に辛くて、苦しかった経験が、振り返ると自らの糧になっているということは、人生を振り返れば多くあるはずだ。
사물의 좋고 나쁨의 판단은 시간 축을 어디에 두는 가에 따라 변해간다. 아이 때에 무서웠던 선생님이 이해하기 쉬운 예일 듯하다. 아이 때에는 정말로 무섭고 싫었던 선생님에게 어른이 된 지금 더욱 감사하고 있다는 건 자주 듣는 이야기다. 그 때, 정말로 쓰리고 힘들었던 경험이 되돌아 보면 스스로의 양식이 되어 있는 건 인생을 되돌아 보면 많을 테다.
とはいえ、辛くて苦しい経験は、その当時という時間軸で捉えると、自分にとって「悪い」ことになる。しかし、その当時から見たときの未来である、今という時間軸で捉えると「良い」ことになるというわけだ。
그렇다고 하면, 쓰라리고 괴로운 경험은 그 당시 라는 시간 축으로 받아들이면 자신으로서는 ‘나쁜’ 것이 된다. 그러나, 그 당시로부터 보았을 때의 미래인 지금이라는 시간 축으로 받아들이면 ‘좋은’ 게 된다는 거다.
では、当時、先生が「私が厳しく叱っているのは君の未来のためだ」と言ったとして、理解できただろうか。辛くて苦しい経験をしている時に、「これは自分の未来のためには良い経験だ」と自分で思える人がどれくらいいるだろうか。「悪い」ことの当事者になった時に、それは簡単ではないのだ。
그러면, 당시 선생님이 ‘내가 무섭게 꾸짖는 것은 너희들의 미래를 위해서다’ 라고 했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을까? 쓰라리고 힘든 경험을 하고 있을 때 ‘이건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좋은 경험이다’ 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쁜’ 것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 이건 간단하지 않은 거다.
繰り返すが、上司は部下より遠い未来を見る責任がある。そして、今という時間軸で捉えて状況を判断するのか、未来という時間軸で捉えて判断するのかでは、物事の「良い」「悪い」は変わってくる。
되돌아가지만, 상사는 부하보다 먼 미래를 볼 책임이 있다. 그리고, 지금이라는 시간 축으로 받아들여 상황을 판단할까, 미래라는 시간 축으로 받아들여 판단하는가에서는 사물의 ‘좋음’, ‘나쁨’은 변해간다.
「今」時点の部下からは「悪い上司」でも未来では「良い上司」になるべき
‘지금’ 시점의 부하로부터는 ‘나쁜 상사’라도 미래에는 ‘좋은 상사’가 될 것
部下の遠い未来を見なければならない上司は、「今」時点の部下からは嫌われ、「悪い上司だ」という評価を受けようが、心を鬼にしてでも「仕事の評価はあくまでも結果」という考えを徹底させるなど、指導すべき点は厳しく指導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だ。
부하의 먼 미래를 보지 않으면 안되는 상사는, ‘지금’ 시점의 부하로부터는 미움을 받고 ‘나쁜 상사다’라는 평가를 받겠지만, 마음을 호랑이*처럼 해서라도 ‘업무의 평가는 어디까지나 결과’라는 생각을 철저하게 하는 등 지도해야 할 점은 엄하게 지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다.
* 鬼にするoninisuru의 鬼oni는 엄한 존재의 의미로 ‘호랑이 선생님’의 호랑이입니다 – 옮긴이
仮に、あなたが「今」時点の部下から好かれよう、嫌われたくないと思い、「良い」上司を演じたとする。その下で育った部下は将来どうなっていくのだろうか。多くの「勘違い」を抱えたまま、生きていくことになる。
만약, 당신이 ‘지금’ 시점의 부하들이 좋아하게끔, 싫어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해서 ‘좋은’ 상사 연기를 한 것으로 하자. 그 아래서 부하는 장래에 어떻게 될까? 많은 ‘착각’을 안은 채 살아가는 게 된다.
만약, 당신이 ‘지금’ 시점의 부하들이 좋아하게끔, 싫어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해서 ‘좋은’ 상사 연기를 한 것으로 하자. 그 아래서 부하는 장래에 어떻게 될까? 많은 ‘착각’을 안은 채 살아가는 게 된다.
例えば、いつも「頑張っている姿」を褒めてくれる上司がいるとする。その部下は「結果が悪くても頑張っている姿を褒めてくれる、部下のモチベーションを上げてくれる『良い』上司だ」と思うだろう。
예를 들면, 언제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자세’를 칭찬해 주는 상사가 있다고 하자. 그 부하는 ‘결과가 나빠도 열심히 노력하고 하고 있는 자세를 칭찬해주는, 부하의 모티베이션을 올려주는 ‘좋은’ 상사다’ 라고 생각할 거다.
예를 들면, 언제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자세’를 칭찬해 주는 상사가 있다고 하자. 그 부하는 ‘결과가 나빠도 열심히 노력하고 하고 있는 자세를 칭찬해주는, 부하의 모티베이션을 올려주는 ‘좋은’ 상사다’ 라고 생각할 거다.
そして、「上司がモチベーションを上げてくれるから頑張ろう」と思う。裏を返せば、「上司がモチベーションを上げてくれなければ頑張れない」人間になってしまい、自分は「モチベーションを上げてもらわなければ頑張らなくて良い存在」だという勘違いをするようになってしまう。また「頑張る姿」が褒められるわけだから、自分が求められていることは「良い結果」ではなく「頑張る姿」だと勘違いしてしまう。その結果、「頑張る姿」をアピールするようになってしまう。
그리고, ‘상사가 모티베이션을 올려주니까 열심히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속을 뒤집으면, ‘상사가 모티베이션을 올려주지 않으면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인간이 되어 버려, 자신은 ‘모티베이션을 올려주지 않으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좋은 존재’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어 버린다. 또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칭찬을 받을 테이므로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좋은 결과’가 아니라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라고 잘못 생각해 버린다. 그 결과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어필하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상사가 모티베이션을 올려주니까 열심히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속을 뒤집으면, ‘상사가 모티베이션을 올려주지 않으면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인간이 되어 버려, 자신은 ‘모티베이션을 올려주지 않으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좋은 존재’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어 버린다. 또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칭찬을 받을 테이므로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좋은 결과’가 아니라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라고 잘못 생각해 버린다. 그 결과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어필하게 되어버린다.
要するに「良い」上司の言動によって、「上司がモチベーションを上げてあげなければ頑張れない、頑張る姿のアピールがうまい、結果にこだわらない部下」が完成してしまうのだ。
요는 ‘좋은’ 상사의 언동에 따라, ‘상사가 모티베이션을 올려 주지 않으면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의 어필이 우수한, 결과에는 상관하지 않는 부하’가 완성되어버리는 거다.
요는 ‘좋은’ 상사의 언동에 따라, ‘상사가 모티베이션을 올려 주지 않으면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의 어필이 우수한, 결과에는 상관하지 않는 부하’가 완성되어버리는 거다.
この勘違いしてしまった部下は、本当に不幸だ。あくまでも「今」という時間軸では何の問題も起きないだろう。むしろ、ストレスがなく、快適に日々を過ごすことができるのではないだろうか。しかし、そこに「時間という概念」が入ってくるとそうはいかない。勘違いした部下には、将来、厳しい現実が待ち構えているからだ。
이런 잘못된 생각을 해버리는 부하는 정말로 불행이다. 어디까지나 ‘지금’이라는 시간 축에는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없이 쾌적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에 ‘시간이라는 개념’이 들어오면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착각을 한 부하는 장래 준엄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생각을 해버리는 부하는 정말로 불행이다. 어디까지나 ‘지금’이라는 시간 축에는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없이 쾌적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에 ‘시간이라는 개념’이 들어오면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착각을 한 부하는 장래 준엄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残念ながら、このような「勘違い部下」が会社で良い評価を受け続けるのは難しい。なぜなら、会社自体が市場からは「頑張る姿」ではなく、あくまでも業績という「結果」で評価されているからだ。
안됐지만 그런 ‘착각을 하는 부하’가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계속 받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회사 자체가 시장으로부터는 ‘열심히 하는 모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실적이라는 ‘결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안됐지만 그런 ‘착각을 하는 부하’가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계속 받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회사 자체가 시장으로부터는 ‘열심히 하는 모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실적이라는 ‘결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頑張る姿」を評価すれば「ビジネスの世界」で生きる力を失う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를 높이 평가하면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힘을 잃는다
会社は「結果」で評価されているのに、会社を構成している従業員は「頑張る姿」で評価される、そんなことが成立し続ける訳がない。どれだけ勘違いをしている部下でも、時間の経過とともに「上司がモチベーションを上げてくれようがくれまいが頑張らないといけない、出した結果の有益性に対して評価を受ける存在」という現実に直面せざるを得ないのが現実なのだ。
회사는 ‘결과’로 평가되고 있는데, 회사를 구성하고 있는 종업원은 ‘열심히 하는 자세’로 평가되는, 그런 것이 계속해서 성립할 턱이 없다. 얼마만큼 착각을 하고 있는 부하라도 시간의 경과와 함께 ‘상사가 모티베이션을 올려 주든지 주지 않든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내놓은 결과의 유익성에 대해서 평가를 받는 존재’라는 현실을 직면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勘違いした部下は「現実の世界」に引き戻される時、大きなストレスを感じることになる。そして、その場から逃げ出し、会社を辞め、再び勘違いできる働き場所を探す。その原因を作りしてしまうのは、「良い」上司なのだ。
착각을 한 부하는 ‘현실세계’로 끌려 돌아올 때, 큰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도망가기 시작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착각이 가능한 일자리를 찾는다. 그 원인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 ‘좋은’ 상사인 거다.
ここで注意すべき点は、勘違いをし続けた部下は、その期間が長ければ長いほど「ビジネスの世界」で生きていく力を失ってしまうことだ。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계속해서 잘못 생각한 부하는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살아갈 힘을 잃고 마는 것이다.
ビジネスの世界で得られる対価とは、本人が出した結果の有益性に対して支払われるというのが、どこまでいっても現実だ。「頑張る姿」に支払われていると勘違いしている部下は、その期間が長ければ長いほど、「有益性のある結果」を出す能力がなくなってしまう。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대가란 본인이 낸 결과의 유익성에 대해서 지불되는 것이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현실이다.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지불된다는 착각을 하는 부하는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유익성이 있는 결과’를 낼 능력이 없어져 버린다.
上司の皆さんには今一度考えていただきたい。あなた自身が「良い」上司だと思われたいがために、部下が将来に向けて「生きていく力」を奪っていないかを。
여러 상사들께서는 다시금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당신 자신이 ‘좋은’상사라고 생각되었으면 하기 때문에, 부하가 장래를 향해 ‘살아갈 힘’을 빼앗고 있지는 않은지를.
上司は、常に部下のためにも「未来を見る責任」があるということを忘れず、日々の部下との「接し方」を考えていただければと思う
상사는 늘 부하를 위해서도 ‘미래를 볼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하루하루 부하를 ‘접하는 방법’을 생각해 줬으면 하고 생각한다.
安藤広大さんの『伸びる会社は「これ」をやらない!』(すばる舎)が好評発売中。224ページ、1620円(税込み)
안도우 코우다이 씨의 ‘발전하는 회사는 ‘이것’을 하지 않는다!’(스바루샤)가 호평 발매 중 224페이지, 1,620엔(소비세 포함)
안도우 코우다이 씨의 ‘발전하는 회사는 ‘이것’을 하지 않는다!’(스바루샤)가 호평 발매 중 224페이지, 1,620엔(소비세 포함)
결국은 책 선전?
그래서 결론은 Spare the rod,
spoil the child! 참고로 이 속담은 구약의 잠언 13장 24절 He who spares the
rod hates his son, but he who loves him is careful to discipline him.에서 나왔답니다. 안도우 씨 이야기 바로 그대로죠? 세상에 어른 노릇 하기가 제일 힘들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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