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2년, 동일본대지진도 6년이 다되어
갑니다.
<阪神大震災22年>弟を守ろうとした母へ「見守っていて」
[한신 대지진 22년] 동생을 지키려고 했던 엄마에게 '지켜보고 있어'
[한신 대지진 22년] 동생을 지키려고 했던 엄마에게 '지켜보고 있어'
毎日新聞 Mainichishinbun
1/17(火) 10:42配信
父菊雄さん(右から2人目)の作ったサンドイッチを供えた仏前で長男の晴翔ちゃんを抱きながら当時を振り返る中川由佳理さん(左端)。右端は夫の清教さん=兵庫県芦屋市で2017年1月17日午前5時42分、三浦博之撮影
아버지 키쿠오 씨(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만든 샌드위치를 올린 불전에 장남 하루토를 안고서 당시를 돌이키는 나카가와 유카리 씨(왼쪽 끝). 오른쪽 끝은 남편 키요노리 씨 = 효우고 현 아시야 시에서 2017년 1월 17일 5시 42분 , 미우라 히로노리 촬영
아버지 키쿠오 씨(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만든 샌드위치를 올린 불전에 장남 하루토를 안고서 당시를 돌이키는 나카가와 유카리 씨(왼쪽 끝). 오른쪽 끝은 남편 키요노리 씨 = 효우고 현 아시야 시에서 2017년 1월 17일 5시 42분 , 미우라 히로노리 촬영
阪神大震災から22年を迎えた17日の朝は、前夜の雨が上がり、澄んだ冷気が寒かったあの日を思い起こさせた。各地で営まれた追悼会場で、自宅の仏前で、出勤前にほこらの前で、犠牲になった大切な人に思いを巡らせ、手を合わせる人たちがいた。被災地は鎮魂の祈りに包まれた。
한신 대지진*으로부터 22년을 맞은 17일 아침은, 전날 밤 비가 그치고 맑아진 냉기가 차가웠던 그 날을 생각나게 했다. 각지에서 올려진 추도식장에서, 자택의 불전에서, 출근 전 사당 앞에서, 희생된 고귀한 사람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을 하며, 손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피해지역은 진혼의 기도에 감싸였다.
* 오오사카大阪와 코오베神戸 그리고 아와지淡路 섬 큰 비해를 준 이 재해의 정식 명칭은 阪神・淡路大震災한신아와지대지진Hanshinawajidaishinsai입니다. – 옮긴이
한신 대지진*으로부터 22년을 맞은 17일 아침은, 전날 밤 비가 그치고 맑아진 냉기가 차가웠던 그 날을 생각나게 했다. 각지에서 올려진 추도식장에서, 자택의 불전에서, 출근 전 사당 앞에서, 희생된 고귀한 사람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을 하며, 손을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피해지역은 진혼의 기도에 감싸였다.
* 오오사카大阪와 코오베神戸 그리고 아와지淡路 섬 큰 비해를 준 이 재해의 정식 명칭은 阪神・淡路大震災한신아와지대지진Hanshinawajidaishinsai입니다. – 옮긴이
17日午前5時46分を少し過ぎたころ、食パンをきれいに切りそろえた三角形のサンドイッチを供えた自宅の仏壇に兵庫県芦屋市の中川由佳理さん(38)は静かに手を合わせた。父の手作りで、震災で逝った母と小学生だった弟のお気に入りだった。壊れた家で母は弟をかばうようにして亡くなった。中川さんは今、父と夫、幼い長男と暮らし、おなかに新たな命を宿す。何をおいても我が子を守ろうとした母。「お母さんのようになりたい。見守っていてね」
17일 오전 5시 46분을 조금 지났을 때, 식빵을 예쁘게 잘라 준비한 삼각형 샌드위치를 올린 자택의 불단仏壇에 효고 켄 아시야 시에 사는 나카가와 유카리 씨(38)은 조용히 손을 모았다. 아버지가 손으로 만든 걸로 지진으로 떠난 엄마와 초등학생이었던 남동생이 좋아하던 거였다. 무너진 집에서 엄마는 남동생을 감싸려고 하다가 돌아가셨다. 나카가와 씨는 지금, 아버지, 남편, 어린 장남과 살며, 배 속에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새끼를 지키겠다고 했던 엄마. '엄마처럼 되고 싶어요. 지켜보면서요'
17일 오전 5시 46분을 조금 지났을 때, 식빵을 예쁘게 잘라 준비한 삼각형 샌드위치를 올린 자택의 불단仏壇에 효고 켄 아시야 시에 사는 나카가와 유카리 씨(38)은 조용히 손을 모았다. 아버지가 손으로 만든 걸로 지진으로 떠난 엄마와 초등학생이었던 남동생이 좋아하던 거였다. 무너진 집에서 엄마는 남동생을 감싸려고 하다가 돌아가셨다. 나카가와 씨는 지금, 아버지, 남편, 어린 장남과 살며, 배 속에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새끼를 지키겠다고 했던 엄마. '엄마처럼 되고 싶어요. 지켜보면서요'
中川さんは震災当時、高校1年で16歳。神戸市東灘区の自宅が全壊し、母和子さん(当時43歳)と小学6年だった弟智仁さん(同12歳)が亡くなった。父と近所の人らが助け出し、通りがかりの車に頼んで病院に運んだが、救えなかった。22年前のあの日、立っていられない揺れの中で和子さんは智仁さんの部屋に駆けつけたと後に聞かされた。
나카가와 씨는 지진 당시 고등학교 1학년으로 16세. 코오베 시 히가시다나 쿠의 자택이 전파되어, 엄마 카즈코 씨(당시 43세)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남동생 토모히토(동 12세)가 죽었다. 아버지와 인근의 사람들에게 구출되어 지나가는 차에 부탁을 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 22년 전 그 날, 일어 설 수 없는 흔들림의 가운데 카즈코 씨는 토모히토의 방에 달려갔다고 들었다.
나카가와 씨는 지진 당시 고등학교 1학년으로 16세. 코오베 시 히가시다나 쿠의 자택이 전파되어, 엄마 카즈코 씨(당시 43세)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남동생 토모히토(동 12세)가 죽었다. 아버지와 인근의 사람들에게 구출되어 지나가는 차에 부탁을 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 22년 전 그 날, 일어 설 수 없는 흔들림의 가운데 카즈코 씨는 토모히토의 방에 달려갔다고 들었다.
「命を救う仕事をしたい」と看護師の道に進み、10年ほど勤務した。2010年6月、夫清教(きよのり)さん(42)と結婚し、翌年、長男晴翔(はると)ちゃん(5)が誕生。おなかに次男がいる。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고싶다.'며 간호사의 길을 걸어, 10년 정도 근무했다. 2010년 6월, 남편 키요노리 씨(42)와 결혼해서, 다음 해 장남 하루토(5)가 탄생. 뱃속에는 작은 아들이 있다.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고싶다.'며 간호사의 길을 걸어, 10년 정도 근무했다. 2010년 6월, 남편 키요노리 씨(42)와 결혼해서, 다음 해 장남 하루토(5)가 탄생. 뱃속에는 작은 아들이 있다.
最近は、おなかが大きくなって晴翔ちゃんと遊ぶのも一苦労だ。つい遺影を見上げて「お母さん、どうやってたん?」。聞きたいことはたくさんある。
최근에는 배가 커져서 하루토와 노는 것도 힘들다. 무심코 영정을 올려다 보며 '엄마, 어떻게 했어?' 듣고 싶은 게 엄청 많다.
최근에는 배가 커져서 하루토와 노는 것도 힘들다. 무심코 영정을 올려다 보며 '엄마, 어떻게 했어?' 듣고 싶은 게 엄청 많다.
毎年巡る1・17。父菊雄さん(62)は2人をしのぶうち、十数年前からサンドイッチを仏前に供え始めた。料理好きで、仕事が休みの日の昼食にサンドイッチを作った。卵焼きやトマト、レタスなどがきれいに挟んである。和子さんも智仁さんも大好きだった。震災で失った、温かで優しかった食卓。「あの朝、お母さんは自らを顧みず、弟を助けようとした。私なら、お母さんのようにできるだろうか」。手を合わせながら涙が込み上げた。「何とか助けたかった」
매년 돌아오는 1월 17일. 아버지 키쿠오 씨(62)는 두 사람을 그리워하며 10수년 전부터 샌드위치를 불전에 올리기 시작했다. 요리하기를 좋아해서, 일을 쉬는 날의 점심에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계란 프라이와 토마토, 양상추가 예쁘게 겹쳐져 있다. 카즈코 씨도 토모히토도 아주 좋아했다. 지진으로 잃었던 따뜻하고 편안했던 식탁. '그날 아침, 엄마는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고, 동생을 구하려고 했어요. 나라면, 엄마처럼 할 수 있었을까?' 손을 모으면서 눈물이 북받쳤다. '뭔가 돕고 싶었다'
매년 돌아오는 1월 17일. 아버지 키쿠오 씨(62)는 두 사람을 그리워하며 10수년 전부터 샌드위치를 불전에 올리기 시작했다. 요리하기를 좋아해서, 일을 쉬는 날의 점심에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계란 프라이와 토마토, 양상추가 예쁘게 겹쳐져 있다. 카즈코 씨도 토모히토도 아주 좋아했다. 지진으로 잃었던 따뜻하고 편안했던 식탁. '그날 아침, 엄마는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고, 동생을 구하려고 했어요. 나라면, 엄마처럼 할 수 있었을까?' 손을 모으면서 눈물이 북받쳤다. '뭔가 돕고 싶었다'
おなかの子が生まれれば和子さんと同じ2児の母。「お母さんのように家族に尽くしたい。見ていてほしい」と願った。【釣田祐喜】
뱃속의 아이가 태어나면 카즈코 씨와 마찬가지로 두 아이의 엄마. '엄마처럼 가족에게 진력하고 싶어요. 봐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츠리다 유우키]
뱃속의 아이가 태어나면 카즈코 씨와 마찬가지로 두 아이의 엄마. '엄마처럼 가족에게 진력하고 싶어요. 봐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츠리다 유우키]
1995년 1월 17일 화요일
5시
46분, 오사카
시 일부와
효고 켄의
타카라즈카 시, 니시노미야
시, 아시야
시, 코오베
시, 아와지
시마(島)에
발생한 M6.9의
강진으로 사망자
6,434명, 실종
3명, 부상
43,972명이
발생했습니다. 재산피해는
당시 가치로
10조엔
내외라고 합니다. M6.9도
작은 지진은
절대로 아닙니다만, 이런
엄청난 피해가
난 것은
이 지진이
바로 향후
30년
이내에 토오쿄오의
도심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직하지진
즉, ‘바로
아래서 땅이
꺼지는 지진’이었기
때문입니다. 통상의
지진이 바이킹이라면, 직하지진은
자이로드롭!
일본에 가서 살던
두 번째
동네 아시야의
이야기라서 더욱
마음이 갑니다. 아시야는
서쪽으로 코오베의
히가시나다 쿠와
동쪽으로 니시노미야
사이에 있는
인구 10만이 채
못되는 작고
참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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