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 주도 예외 없이 걱정과 외로움에 몸부림친 전쟁과 같은 닷새였죠?
不安に強い人は「孤独」を飼い慣らしている
불안에 강한 사람은 ‘고독’을 길들이고 있다
불안에 강한 사람은 ‘고독’을 길들이고 있다
「孤独」と「寂しい」はまったく別のことだ
‘고독’과 ‘쓸쓸하다’는 전혀 다른 것이다
‘고독’과 ‘쓸쓸하다’는 전혀 다른 것이다
TOYOKEIZAI
ONLINE 2017年11月10日
自分を確立するためにも、歩んでいく道を見定めるにも、孤独であることが必要なのです(写真 : 白熊
/ PIXTA)
자신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걸어 갈 길을 확정하기 위해서도, 고독함이 필요한 겁니다. (사진 : 시로쿠마 / PIXTA)
자신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걸어 갈 길을 확정하기 위해서도, 고독함이 필요한 겁니다. (사진 : 시로쿠마 / PIXTA)
ここ10年ほどで急速に浸透したものの1つにSNSがあります。消費者庁は2016年、同年末には国内におけるSNSの利用者数が6872万人に達する見込みと発表しました。
최근 10년 정도 급속하게 침투한 것의 하나에 SNS가 있습니다. 소비자청*은 2016년, 같은 해 말에는 국내에 있어 SNS 이용자 수가 6.872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발표했습니다.
* 우리나라의 한국소비자보호원Korea Consumer Agency이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정부출연기관인데 비해 일본의 消費者庁Shouhishachou, Consumer Affairs Agency도 일본 공정거래위원회 출신들로 출범하기는 했습니다만 총리부, 경제기획청, 오키나와개발청을 합친 일본 정부의 컨트롤 타워라고 할 수 있는 내각부内閣府Naikakufu, Cabinet Office 산하의 행정기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얼마전 생리대 파동 때 소비자청 설치 주장이 나왔었죠? - 옮긴이
최근 10년 정도 급속하게 침투한 것의 하나에 SNS가 있습니다. 소비자청*은 2016년, 같은 해 말에는 국내에 있어 SNS 이용자 수가 6.872만명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발표했습니다.
* 우리나라의 한국소비자보호원Korea Consumer Agency이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정부출연기관인데 비해 일본의 消費者庁Shouhishachou, Consumer Affairs Agency도 일본 공정거래위원회 출신들로 출범하기는 했습니다만 총리부, 경제기획청, 오키나와개발청을 합친 일본 정부의 컨트롤 타워라고 할 수 있는 내각부内閣府Naikakufu, Cabinet Office 산하의 행정기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얼마전 생리대 파동 때 소비자청 설치 주장이 나왔었죠? - 옮긴이
なぜここまでSNSは社会に受け入れられたのでしょうか。根本にあるのは、人とつながっていたい、仲間が欲しい、という欲求と言ってもいいでしょう。いまある交友関係の結びつきを強めたい、新たなつながりをつくりたい……そんな心理が働いているはずです。
왜 이렇게까지 SNS가 사회에 받아 들여진 것일까요? 근본에 있는 것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다,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욕구라고 말해도 되겠죠. 지금 어떤 교우관계 맺기를 강화하고 싶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싶다…… 그런 심리가 작동을 하고 있을 테죠.
왜 이렇게까지 SNS가 사회에 받아 들여진 것일까요? 근본에 있는 것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싶다,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욕구라고 말해도 되겠죠. 지금 어떤 교우관계 맺기를 강화하고 싶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싶다…… 그런 심리가 작동을 하고 있을 테죠.
言い換えるなら、自分は1人ではない、孤独ではない、と確認できるツールとしてSNSが利用されている側面があるでしょう。多くの人にとって、孤独になることは恐怖なのです。
바꿔 말하면, 자신은 혼자가 아니다, 고독하지 않다라고 확인할 수 있는 투tool로서 SNS가 이용되고 있는 측면이 있겠죠.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고독해 지는 것은 공포인 겁니다.
바꿔 말하면, 자신은 혼자가 아니다, 고독하지 않다라고 확인할 수 있는 투tool로서 SNS가 이용되고 있는 측면이 있겠죠.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고독해 지는 것은 공포인 겁니다.
しかし、孤独になると、人は本当につらいのでしょうか。禅の思想と日本の伝統文化に根ざした「禅の庭」の創作活動によって、「世界が尊敬する日本人100人」に選出された枡野俊明氏(新刊『近すぎず、遠すぎず。』がある)は、孤独になり、人生や自らの使命と真摯に向き合うことが、境遇や状況を好転させる原動力になると言います。
그러나, 고독해 지면 사람은 당연히 비참한 것일까요? 선禅Zen 사상과 일본의 전통문화에 뿌리박은 ‘禅の庭Zennoniwa[이하 젠노니와 – 옮긴이]’의 창작활동으로 ‘세상이 존경하는 일본 사람 100인’에 선출된 마스노 센묘우 씨(신간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이 있다.)는 고독해 져서, 인생이나 자신들의 사명과 진지하게 마주할 때가 경우나 환경을 호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고독해 지면 사람은 당연히 비참한 것일까요? 선禅Zen 사상과 일본의 전통문화에 뿌리박은 ‘禅の庭Zennoniwa[이하 젠노니와 – 옮긴이]’의 창작활동으로 ‘세상이 존경하는 일본 사람 100인’에 선출된 마스노 센묘우 씨(신간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이 있다.)는 고독해 져서, 인생이나 자신들의 사명과 진지하게 마주할 때가 경우나 환경을 호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합니다.
「孤独=寂しい」を疑え
‘고독=외롭다’를 의심하라
‘고독=외롭다’를 의심하라
人は集団に属していないと不安に駆られるようです。アメリカの心理学者、アブラハム・マズローが人間の欲求を理論化した「欲求5段階説」でも、食事・睡眠・排泄などの第1階層「生理の欲求」、安全で安定した暮らしを維持する第2階層「安全の欲求」、その上位となる第3階層に、自分が社会に受け入れられているという感覚をもつ「社会的欲求(帰属欲求)」が位置づけられています。グループの一員でいたい、仲間が欲しい、というのは人の“性(さが)”といってもいいでしょう。
사람은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 불안에 사로잡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Maslow가 인간의 욕구를 이론화한 ‘욕구 5단계설’에서도, 식사・수면・배설 등의 제1단계 ‘생리의 욕구’,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유지하는 제2단계 ‘안전의 욕구’, 그리고 상위가 되는 제3단계에 자신이 사회에 받아 들여지는가 라는 감각을 갖는 ‘사회적 욕구(귀속욕구)’가 자리 매겨져 있습니다. 그룹의 일원이고 싶다,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것은 사람의 ‘천성(性 saga)’이라고 해도 되겠죠.
사람은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 불안에 사로잡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Maslow가 인간의 욕구를 이론화한 ‘욕구 5단계설’에서도, 식사・수면・배설 등의 제1단계 ‘생리의 욕구’,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유지하는 제2단계 ‘안전의 욕구’, 그리고 상위가 되는 제3단계에 자신이 사회에 받아 들여지는가 라는 감각을 갖는 ‘사회적 욕구(귀속욕구)’가 자리 매겨져 있습니다. 그룹의 일원이고 싶다,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것은 사람의 ‘천성(性 saga)’이라고 해도 되겠죠.
旧来、多くの人にとって、社会に受け入れられていると実感できるのは、職場や仕事上の人間関係がうまくいっているときだったり、地域コミュニティでトラブルなく人づきあいをしているケースだったりしたわけですが、現代はそうした旧来型の関係に加えて、SNS上でのつながりを求める人が多くなりました。
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사회에서 받아 들여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직장이나 업무상 인간관계가 잘 되어갈 때였거나, 지역 커뮤니티에서 트러블 없이 사람을 사귀고 있는 케이스였거나 할 것 입니다만, 현재는 그런 예전 형태의 관계에 더해서 SNS 상에서의 관계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사회에서 받아 들여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직장이나 업무상 인간관계가 잘 되어갈 때였거나, 지역 커뮤니티에서 트러블 없이 사람을 사귀고 있는 케이스였거나 할 것 입니다만, 현재는 그런 예전 형태의 관계에 더해서 SNS 상에서의 관계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誰もが気軽に参加できるSNS上のつながりが何かの役に立つこともあるでしょうが、確たる芯がある集団ではないように思われてなりません。仮に、SNS上でつながっている1人が窮地に立って救いを求めたとして、手を差し伸べる人はどれだけいるでしょうか。何か事があれば、つながりの希薄さは露呈す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할 수 있는 SNS 상의 관계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도 있겠습니다만, 확고한 심지가 있는 집단에서는 없는 것처럼 생각되지 않습니다. 혹시, SNS 상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궁지에 서서 구조를 구하고 있다고 해서 손을 뻗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무언가 일이 있으면, 관계의 희박함은 들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할 수 있는 SNS 상의 관계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도 있겠습니다만, 확고한 심지가 있는 집단에서는 없는 것처럼 생각되지 않습니다. 혹시, SNS 상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궁지에 서서 구조를 구하고 있다고 해서 손을 뻗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무언가 일이 있으면, 관계의 희박함은 들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それでも人はつながりを求め、グループの一員であることを欲します。理由は、1人でいることが不安だからであり、そこにあるのは「孤独(1人)=寂しい」という図式です。しかし、これには異論があります。私は、孤独であることと寂しさは異なるものだと思います。
그렇더라도 사람은 관계를 찾고, 그룹의 일원이기를 바랍니다. 이유는 혼자 있는 것이 불안하기 때문이고, 거기에 있는 것은 ‘고독(혼자)=쓸쓸하다’라는 도식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론이 있습니다. 저는 고독하다는 것과 쓸쓸함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더라도 사람은 관계를 찾고, 그룹의 일원이기를 바랍니다. 이유는 혼자 있는 것이 불안하기 때문이고, 거기에 있는 것은 ‘고독(혼자)=쓸쓸하다’라는 도식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론이 있습니다. 저는 고독하다는 것과 쓸쓸함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お釈迦様は、「犀(さい)の角(つの)のようにただ独り歩め」とおっしゃいました。“孤独のすすめ”といってもいいでしょう。自分を確立するためにも、自分が歩んでいく道を見定めるにも、孤独であることが必要なのです。
부처님은 ‘코뿔소(sai)의 뿔(tsuno)와 같이 혼자서 걸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독을 권함’이라고 해도 되겠죠. 자신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자신이 걸어갈 길을 확정하기 위해서도, 고독함이 필요한 겁니다.
* 기사 원문에 언뜻 보이는 것처럼 한자로 如犀角獨步行이라는 말이 최인호의 소설에도 나오고 거기서 모티브를 얻었는지 공지영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데요. 최초의 불경이며 초기 불교의 대표 경전인 숫타-니파타Sutta-nipata의 원문(물론 빨리Pali어 원전을 한자로 옮긴 것입니다만)은 이렇답니다.
수행자는
如獅子聲不驚 사자처럼 소리에 놀라지 말고
如風不繫於網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말고
如蓮花不染塵 연꽃처럼 진흙에 물들지 말고
如犀角獨步行 쇠뿔처럼 혼자서 걸어서 가라.
어떤 블로그에 보니 如犀角獨步行을 빨리어로는 eko care khaggavisānkappo/에코 짜레 칵가위사나깝뽀/라고 한다네요. – 옮긴이
부처님은 ‘코뿔소(sai)의 뿔(tsuno)와 같이 혼자서 걸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독을 권함’이라고 해도 되겠죠. 자신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자신이 걸어갈 길을 확정하기 위해서도, 고독함이 필요한 겁니다.
* 기사 원문에 언뜻 보이는 것처럼 한자로 如犀角獨步行이라는 말이 최인호의 소설에도 나오고 거기서 모티브를 얻었는지 공지영의 소설 제목이기도 한데요. 최초의 불경이며 초기 불교의 대표 경전인 숫타-니파타Sutta-nipata의 원문(물론 빨리Pali어 원전을 한자로 옮긴 것입니다만)은 이렇답니다.
수행자는
如獅子聲不驚 사자처럼 소리에 놀라지 말고
如風不繫於網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말고
如蓮花不染塵 연꽃처럼 진흙에 물들지 말고
如犀角獨步行 쇠뿔처럼 혼자서 걸어서 가라.
어떤 블로그에 보니 如犀角獨步行을 빨리어로는 eko care khaggavisānkappo/에코 짜레 칵가위사나깝뽀/라고 한다네요. – 옮긴이
独りで静かに過ごす孤独な時間のなかでこそ、自己は形成され、確立されていきます。自分を見つめるための充実した時間をもたらしてくれる孤独が、寂しいものであるわけがありません。
홀로 조용히 지내는 고독한 시간 속에서야말로 자신은 형성되고 확립되어 갑니다.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 충실한 시간을 가져다 주는 고독이 쓸쓸한 것일 리가 없습니다.
홀로 조용히 지내는 고독한 시간 속에서야말로 자신은 형성되고 확립되어 갑니다.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 충실한 시간을 가져다 주는 고독이 쓸쓸한 것일 리가 없습니다.
他人と比較しても、いいことは1つもない
타인과 비교하더라도 좋은 것은 하나도 없다
孤独な時間を得て、自己を確立する過程では、自分を他人と比較しないということがとても重要になります。「隣の芝生は青い」という言葉があるように、人は得てして、他人のものはよく見えてしまうものです。しかし、他人と比較して、自分にいいことがあるでしょうか。
고독한 시간을 얻어 자신을 확립하는 과정에서는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것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남의 집 잔디는 파랗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자칫하면 타인의 것은 좋아 보이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타인과 비교해서 자신에게 좋은 것이 있을까요?
* 일본어에는 비슷한 속담으로 隣の花は赤いTonarinohanawaakai남의 집 꽃은 빨갛다 또는, 隣の糂粏味噌Tonarinojindamiso 남의 집 된장은 구수하다 라고도 하는데요, 우리말 속담의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와 딱 들어 맞는 말이죠? - 옮긴이
고독한 시간을 얻어 자신을 확립하는 과정에서는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것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남의 집 잔디는 파랗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자칫하면 타인의 것은 좋아 보이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타인과 비교해서 자신에게 좋은 것이 있을까요?
* 일본어에는 비슷한 속담으로 隣の花は赤いTonarinohanawaakai남의 집 꽃은 빨갛다 또는, 隣の糂粏味噌Tonarinojindamiso 남의 집 된장은 구수하다 라고도 하는데요, 우리말 속담의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와 딱 들어 맞는 말이죠? - 옮긴이
禅では、比較することを強く戒めています。私は多くの「禅の庭」を手がけてきましたが、自分の作品とどなたかの作品を比べるということはまったくありません。それだけでなく、自分の作品どうしを比較することもしません。「禅の庭」はそのときどきの自分の心を表現したものです。自分の心の有り様、心の境地がそのまま「禅の庭」にあらわれるのですから、比較自体がありえないのです。
선禅에서는 비교하는 것을 강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저는 많은 ‘젠노니와’를 손 대 오고 있습니다만, 자신의 작품과 어느 분인가의 작품을 비교한다고 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끼리 비교하는 일도 없습니다. ‘젠노니와’는 그때 그때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상태, 마음의 경지가 그대로 ‘젠노니와’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선禅에서는 비교하는 것을 강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저는 많은 ‘젠노니와’를 손 대 오고 있습니다만, 자신의 작품과 어느 분인가의 작품을 비교한다고 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자신의 작품끼리 비교하는 일도 없습니다. ‘젠노니와’는 그때 그때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상태, 마음의 경지가 그대로 ‘젠노니와’에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있을 수 없습니다.
社会や組織においても、比べることに意味はありません。たとえば、待遇のいい会社にいる友人と自分を比べたら、自分の待遇が改善されますか。大きな仕事を任されている同期社員と自分を比べることで、自分にいい仕事がまわってきますか。比べたところで自分は変わらないし、事態が好転することもないのです。それどころか、羨望や嫉妬、自己否定といったネガティブな感情にとらわれて、余計につらくなるだけでしょう。
사회나 조직에 있어서도, 비교하는 일에 의미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대우가 좋은 회사에 있는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면, 자신의 대우가 개선됩니까? 큰 일이 맡겨져 있는 동기 직원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좋은 업무가 돌아 옵니까? 비교한 일로 해서 자신은 변하지 않고, 사태가 호전되는 일도 없는 겁니다. 그렇기는커녕 선망이나 질투, 자기 부정이라는 네가티브한 감정에 사로잡혀, 쓸데없이 괴로워 질 뿐이죠.
사회나 조직에 있어서도, 비교하는 일에 의미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대우가 좋은 회사에 있는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면, 자신의 대우가 개선됩니까? 큰 일이 맡겨져 있는 동기 직원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좋은 업무가 돌아 옵니까? 비교한 일로 해서 자신은 변하지 않고, 사태가 호전되는 일도 없는 겁니다. 그렇기는커녕 선망이나 질투, 자기 부정이라는 네가티브한 감정에 사로잡혀, 쓸데없이 괴로워 질 뿐이죠.
比較の対象になるのは特定の相手だけではありません。情報過多の現代においては、比較の対象もさまざまとなります。世代の平均年収であったり、流行の必携アイテムであったり、その手の情報に触れるとつい自分と比較してしまうでしょうが、自己の確立のためには、それらは無意味です。情報に振り回されてはいけません。
비교의 대상이 되는 것은 특정한 상대만이 아닙니다. 정보 과다의 현대에 있어서는, 비교의 대상도 여러가지가 됩니다. 세대의 평균 연봉이기도 하고, 유행에 필수 아이템이기도 하고, 그런 종류의 정보를 접하면 바로 자신과 비교해 버립니다만, 자신의 확립을 위해서는 그런 건 무의미합니다. 정보에 휘둘려서는 안됩니다.
비교의 대상이 되는 것은 특정한 상대만이 아닙니다. 정보 과다의 현대에 있어서는, 비교의 대상도 여러가지가 됩니다. 세대의 평균 연봉이기도 하고, 유행에 필수 아이템이기도 하고, 그런 종류의 정보를 접하면 바로 자신과 비교해 버립니다만, 자신의 확립을 위해서는 그런 건 무의미합니다. 정보에 휘둘려서는 안됩니다.
寝る前の30分間、静かな時間をもつ
잠들기 전 30분간, 조용한 시간을 갖는다
잠들기 전 30분간, 조용한 시간을 갖는다
『近すぎず、遠すぎず。 他人に振り回されない人付き合いの極意』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고.*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 사귐의 비법’
* 책 제목 ‘近すぎず、遠すぎずchika sugizu, too sugizu’의 음감이 좋습니다. – 옮긴이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고.*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 사귐의 비법’
* 책 제목 ‘近すぎず、遠すぎずchika sugizu, too sugizu’의 음감이 좋습니다. – 옮긴이
孤独の大切さが理解できても、他者との比較を断ち切るのは容易ではないかもしれません。心の有り様を、意識的に現在とは違う状態にするためには、それなりのトレーニングが必要であるということも、一面では真実です。そこで、本稿の最後に、本来の自己に出会う具体的な方法をご紹介しましょう。
고독의 대단함을 이해할 수 있어도, 타자와 비교를 그만두는 것은 용이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마음의 상태를 의식적으로 현재와는 다른 상태로 하기 위해서는 그 나름의 트레이닝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진실입니다.
고독의 대단함을 이해할 수 있어도, 타자와 비교를 그만두는 것은 용이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마음의 상태를 의식적으로 현재와는 다른 상태로 하기 위해서는 그 나름의 트레이닝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도 한편으로는 진실입니다.
それは、寝る前の30分間、静かな時間をもつことです。本来は、坐禅をして穏やかな心、研ぎ澄まされた心に整えるのがいちばんですが、坐禅の心得がないという人は、自分が本当に心地よいと感じることをして、30分間、静かに過ごしてみてください。静かな曲調の音楽を聴くのもいいですし、心を落ち着けてくれるアロマを焚くのもいいでしょう。
그것은 잠들기 전 30분간, 조용한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원래는 좌선을 하고 평온한 마음, 잘 닦인 마음으로 갖추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만, 좌선의 마음가짐이 없다는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로 편안하다고 느끼는 일을 하고, 30분간, 조용히 보내 보세요. 조용한 곡조의 음악을 듣는 것도 좋고,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아로마를 피우는 것도 좋겠죠.
그것은 잠들기 전 30분간, 조용한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원래는 좌선을 하고 평온한 마음, 잘 닦인 마음으로 갖추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만, 좌선의 마음가짐이 없다는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로 편안하다고 느끼는 일을 하고, 30분간, 조용히 보내 보세요. 조용한 곡조의 음악을 듣는 것도 좋고,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아로마를 피우는 것도 좋겠죠.
経過していく時間に、「ああ、なんだか心地よいなあ」と身を任せることが大事です。そんな時間は坐禅にも似て、心を整えてくれることでしょう。そして、30分間の最後の5分(あるいは10分)を、自分を見つめる時間にあてるのです。その日の仕事や人間関係でストレスを感じていたとしても、静かな時間を過ごすことで、そこから意識は離れます。また、リラックスした状態になることで、集中力が高まっていますから、短い時間でも自分をしっかり見つめることができます。
경과해 가는 시간에 ‘아아, 뭔가 편안하다’고 몸을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시간은 좌선과도 비슷해서 마음을 갖추게 해 주겠죠. 그리고, 30분간의 마지막 5분(또는 10분)을, 자신을 보는 시간으로 할당하는 것입니다. 그날의 업무나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느꼈다고 해도, 조용한 시간을 보냄으로써 거기서부터 의식은 벗어납니다. 또한, 릴랙스한 상태가 됨으로써 집중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도 자신을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경과해 가는 시간에 ‘아아, 뭔가 편안하다’고 몸을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시간은 좌선과도 비슷해서 마음을 갖추게 해 주겠죠. 그리고, 30분간의 마지막 5분(또는 10분)을, 자신을 보는 시간으로 할당하는 것입니다. 그날의 업무나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느꼈다고 해도, 조용한 시간을 보냄으로써 거기서부터 의식은 벗어납니다. 또한, 릴랙스한 상태가 됨으로써 집중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도 자신을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孤独と寂しさは違うことを知り、自分をしっかり見つめることを日課にすれば、ほどなくして人間関係の悩みとは無縁の、強い自分になっていることでしょう。
고독과 쓸쓸함은 다르다는 걸 알고서 자신을 확실하게 보는 것을 일과로 하면, 얼마 가지 않아 인간관계의 고민과는 인연이 없어진 강한 자신이 되어 있겠죠.
고독과 쓸쓸함은 다르다는 걸 알고서 자신을 확실하게 보는 것을 일과로 하면, 얼마 가지 않아 인간관계의 고민과는 인연이 없어진 강한 자신이 되어 있겠죠.
기억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난 3월말에도 불안이 마음을 지배해 버리는 상태인 사량思量을 버리는 비사량非思量/hisharyou/ 이란 글로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 마스노 슌묘우의 기사입니다. 그 때도 잠들기 30분 전에는 일은 일절 잊어 버리라고 했었죠?
Alone but not a lonely life! [끝]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