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진출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도 충분히 겪었음 직한 ‘리스크’입니다. 三不 조공에 ‘씨이习 황제의 아량’으로 중국의 문이 다시 열리려는 듯해 보이는 시기 다시 생각해 봅니다.
140年続く刃物老舗が直面した「中国リスク」
140년 이어온 오래된 칼 가게가 직면한 ‘중국리스크’
140년 이어온 오래된 칼 가게가 직면한 ‘중국리스크’
旧正月前は「土産用」に商品の盗難が相次ぐ
구정 전에는 ‘기념품 용’으로 상품 도난이 이어진다
구정 전에는 ‘기념품 용’으로 상품 도난이 이어진다
TOYOKEIZAI
ONLINE 2017年10月25日
刀鍛冶が明治初頭に創業した刃物メーカー・三星刃物。140年の歴史の中で、グローバル化や新規事業立ち上げなど乗り越えてきた苦難は数多い(写真:三星刃物)
도공刀鍛冶이 메이지 초기에 창업한 칼붙이 메이커・미츠보시하모노三星刃物. 140년의 역사 속에 글로벌화와 신사업 개시 등 넘어온 고난이 수없이 많다 (사진 : 미츠보시하모노)
近年、日本刀がブームになっている。きっかけとなったのは、DMMが制作したPC・スマホゲーム「刀剣乱舞」。美男子の姿をした名刀を育成するというシミュレーションゲームで、女性を中心に大ヒットした。「キャラクターの由来となった刀を見たい」と日本刀が展示されている博物館や美術館の人気も上昇中だ。
근년, 닙폰토우日本刀*가 붐이 되고 있다. 계기가 된 건 DMM이 만든 PC・스마트폰 게임 ‘刀剣乱舞Dokenranbu’. 미남자의 모습을 한 명검을 육성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여성을 중심으로 큰 히트다. ‘캐릭터의 유래가 된 칼을 보고 싶다’며 닙폰토우가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인기도 상승 중이다.
근년, 닙폰토우日本刀*가 붐이 되고 있다. 계기가 된 건 DMM이 만든 PC・스마트폰 게임 ‘刀剣乱舞Dokenranbu’. 미남자의 모습을 한 명검을 육성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여성을 중심으로 큰 히트다. ‘캐릭터의 유래가 된 칼을 보고 싶다’며 닙폰토우가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인기도 상승 중이다.
* 지난
주의
니혼슈日本酒와 마찬가지로
Japanese sword나 Samurai sword 대신 Nipponto로 고유명사화하고
있음을
감안해서
‘일본도’가 아닌 ‘닙폰토우’로 옮깁니다. 관련하여
‘니혼토우’가 아니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니혼토우라고
해도
틀린
건
아닙니다. 좀
낯설게
들릴
뿐… 日本을 Nihon으로
읽을지
Nippon으로 읽을 지는 원칙이나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설왕설래합니다. 한자로는
똑같이
日本橋라고
쓰는
지명도
토오쿄오의
일본
도로
원점은
Nihonbashi, 오오사카의 전자상가인 덴덴타운은 Nipponbashi입니다.
그런데
일설로는
1964년 토오쿄오
올림픽
떄
응원을
하면서부터
Nihon이 Nippon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강렬함이나
강조가
필요한
단어는
Nippon이라고도 합니다만, 대체로
Nippon으로
바뀌어가는
추세입니다. – 옮긴이
また、海外でも「Samurai Sword(サムライソード)」と呼ばれるなど、クールジャパンも相まって丁寧な製造方法や仕上がりの美しさが外国人を魅了している。
또한, 해외에서도 「Samurai Sword(사무라이 소우도)」라고 불리는 등, 쿠루 쟈팡Cool Japan*도 이와 더불어 반듯한 제조방법이나 마무리의 아름다움이 외국인들을 매료하고 있다.
* Cool Japan은 일본 독자 문화가 해외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현상 또는 그 일본문화 자체를 지칭합니다. cool은 역시나 세련되고, 멋지고, 소위 ‘간지나는’의 의미로 당초에는 아키하바라로 대표되는 아니메, 시부야 하라주쿠의 패션 등 팝 컬춰pop culture를 가리켰지만 식품이나 전통공예, 가전 등 광범위한 문화를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국가브랜드전략의 국책 과제로 문부과학성, 산업생산성, 외교성 등 3개 성이 연간 수 십 억 엔의 예산으로 홍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 옮긴이
또한, 해외에서도 「Samurai Sword(사무라이 소우도)」라고 불리는 등, 쿠루 쟈팡Cool Japan*도 이와 더불어 반듯한 제조방법이나 마무리의 아름다움이 외국인들을 매료하고 있다.
* Cool Japan은 일본 독자 문화가 해외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현상 또는 그 일본문화 자체를 지칭합니다. cool은 역시나 세련되고, 멋지고, 소위 ‘간지나는’의 의미로 당초에는 아키하바라로 대표되는 아니메, 시부야 하라주쿠의 패션 등 팝 컬춰pop culture를 가리켰지만 식품이나 전통공예, 가전 등 광범위한 문화를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국가브랜드전략의 국책 과제로 문부과학성, 산업생산성, 외교성 등 3개 성이 연간 수 십 억 엔의 예산으로 홍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 옮긴이
江戸以降、需要が減った日本刀だが…
에도 이후 수요가 줄어든 닙폰토우이지만…
에도 이후 수요가 줄어든 닙폰토우이지만…
関鍛冶(現・岐阜県関市)は日本刀の一大生産地として栄え、最盛期の室町時代には数百人の刀匠が住んでいたとされる。しかし、1600年の「関ヶ原の戦い」の後、約300年続く平穏な江戸時代に入ると日本刀の需要は急減、多くの刀匠が包丁や小刀、はさみなどの打刃物鍛冶に転向した。
세키카지(현・키후 현 세키 시)는 닙폰토우 최대의 생산지로서 번성해서 전성기인 무로마치* 시대에는 수백명의 칼 장인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600년의 ‘세키가하라** 전투’뒤, 약 300년을 이어온 평온한 에도시대에 들어서면 닙폰토우의 수요는 급감, 많은 칼 장인들이 식칼이나 작은 칼, 가위 등의 두드려 만드는 대장간으로 전향했다.
* 1336년부터 1573년까지의 무로마치 시대는 아시카가 타카우치가 세운 무로마치 막부가 일본을 통치하던 시기로 중세 일본의 안정기입니다. 이 막부가 무너지고 약 1600년까지 일본은 피비린내 나는,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와 문화가 융성하는 전국戦国시대 또는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로 들어갑니다.
** 위의 전국시대가 1600년 10월 21일 기후 현의 세키가하라 벌판에서 벌어진 토쿠가와 이에야스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토쿠가와 이에야스 군이 승리함으로서 일본은 통일되고 250년간의 에도시대로 들어가게 됩니다. 당초에 10만 4천 대 8만2천의 전력 차이와 토쿠가와 군의 우세한 포진으로 시작 전부터 전투의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지만, 그런 열세를 바로 읽은 것이었는지 토요토미 군의 내분과 이탈 등으로 토쿠카와 군은 최대 1만명, 토요토미군은 최대 3만2,600명의 전사자를 남기며 30년 간의 전란이 단 하루, 그것도 실제로는 안개 때문에 한나절의 싸움으로 결판! 얼마나 일본스럽습니까? – 옮긴이
세키카지(현・키후 현 세키 시)는 닙폰토우 최대의 생산지로서 번성해서 전성기인 무로마치* 시대에는 수백명의 칼 장인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600년의 ‘세키가하라** 전투’뒤, 약 300년을 이어온 평온한 에도시대에 들어서면 닙폰토우의 수요는 급감, 많은 칼 장인들이 식칼이나 작은 칼, 가위 등의 두드려 만드는 대장간으로 전향했다.
* 1336년부터 1573년까지의 무로마치 시대는 아시카가 타카우치가 세운 무로마치 막부가 일본을 통치하던 시기로 중세 일본의 안정기입니다. 이 막부가 무너지고 약 1600년까지 일본은 피비린내 나는,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와 문화가 융성하는 전국戦国시대 또는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로 들어갑니다.
** 위의 전국시대가 1600년 10월 21일 기후 현의 세키가하라 벌판에서 벌어진 토쿠가와 이에야스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토쿠가와 이에야스 군이 승리함으로서 일본은 통일되고 250년간의 에도시대로 들어가게 됩니다. 당초에 10만 4천 대 8만2천의 전력 차이와 토쿠가와 군의 우세한 포진으로 시작 전부터 전투의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지만, 그런 열세를 바로 읽은 것이었는지 토요토미 군의 내분과 이탈 등으로 토쿠카와 군은 최대 1만명, 토요토미군은 최대 3만2,600명의 전사자를 남기며 30년 간의 전란이 단 하루, 그것도 실제로는 안개 때문에 한나절의 싸움으로 결판! 얼마나 일본스럽습니까? – 옮긴이
関市に本社を置く三星刃物(みつぼしはもの)も、刀鍛冶だった渡邉善吉氏が1873年に創業した刃物製造の老舗だ。大正時代に東南アジアへ輸出を始め、1957年にはニューヨーク支店を開設するなど、時代を先取り海外進出に乗り出した。現在は、米国や欧州メーカー向けに包丁・ナイフ・洋食器のOEM(相手先ブランドによる生産)やキッチン商品の輸入販売、自社ブランド製品の製造販売を行っている。
세키 시에 본사를 둔 미츠보시하모노(Mitsubishi Hamono, Mitsuboshi Cutlery)도 칼 대장장이였던 와타나베 요시키치 씨가 1873년 창업한 칼붙이 제조의 유서 깊은 가게*다. 다이쇼** 시대에 동남아에 수출을 시작해, 1957년에는 뉴욕 지점을 개설하는 등 시대를 앞서 해외 진출을 나섰다. 현재는 미국이나 유럽 메이커를 대상으로 식칼・나이프・양식기의 OEM(상대 브랜드로 생산)이나 키친 상품 수입판매, 자사 브랜드 제품의 제조 판매를 하고 있다
* 노포老舗라는 단어가 우리말에 없는 단어는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낯이 설죠? 일본어 발음 그대로 /shinese/로 옮길 수도 없고, 오래된 가게 또는 유서 깊은 가게 정도가 적절할까요?
** 大正時代Daisho Jidai 는 1912년부터 1926년까지 다이쇼우大正 텐노우 재임 기간입니다. 거의 이름뿐인 1차세계대전 참전으로 승전국이 되어, 한반도와 타이완의 식민지화를 확립하고 만주를 실효 지배하게 되었으며, 전 세계가 불황으로 빠져 드는 가운데도, 일본은 수출이 3배나 늘고 채권국으로 변모했습니다. 한편, 풍요해진 경제 사정 덕에 문화가 융성하고 참정권 확대 등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한반도와 중국에 대한 식민지배 중단 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 소위 다이쇼우 데모크라시라는 풍조가 있었습니다만, 말기에 들어 세계적인 불황의 확대는 결국 일본을 군국주의로 빠져 들게 만들었습니다. - 옮긴이
세키 시에 본사를 둔 미츠보시하모노(Mitsubishi Hamono, Mitsuboshi Cutlery)도 칼 대장장이였던 와타나베 요시키치 씨가 1873년 창업한 칼붙이 제조의 유서 깊은 가게*다. 다이쇼** 시대에 동남아에 수출을 시작해, 1957년에는 뉴욕 지점을 개설하는 등 시대를 앞서 해외 진출을 나섰다. 현재는 미국이나 유럽 메이커를 대상으로 식칼・나이프・양식기의 OEM(상대 브랜드로 생산)이나 키친 상품 수입판매, 자사 브랜드 제품의 제조 판매를 하고 있다
* 노포老舗라는 단어가 우리말에 없는 단어는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낯이 설죠? 일본어 발음 그대로 /shinese/로 옮길 수도 없고, 오래된 가게 또는 유서 깊은 가게 정도가 적절할까요?
** 大正時代Daisho Jidai 는 1912년부터 1926년까지 다이쇼우大正 텐노우 재임 기간입니다. 거의 이름뿐인 1차세계대전 참전으로 승전국이 되어, 한반도와 타이완의 식민지화를 확립하고 만주를 실효 지배하게 되었으며, 전 세계가 불황으로 빠져 드는 가운데도, 일본은 수출이 3배나 늘고 채권국으로 변모했습니다. 한편, 풍요해진 경제 사정 덕에 문화가 융성하고 참정권 확대 등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한반도와 중국에 대한 식민지배 중단 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 소위 다이쇼우 데모크라시라는 풍조가 있었습니다만, 말기에 들어 세계적인 불황의 확대는 결국 일본을 군국주의로 빠져 들게 만들었습니다. - 옮긴이
刀鍛冶をしていた初代から数えて5代目の渡邉隆久社長。海外展開、オリジナルブランドの構築などを推進している(写真:三星刃物)
칼 대장장이 하던 초대에서부터 헤아려 5대 째인 와타나베 타카히사 사장. 해외 개발,
오리지날 브랜드 구축 등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 : 미츠보시하모노)
現在5代目社長を務める渡邉隆久氏は創業者のひ孫にあたる。4人姉弟の末っ子で唯一の男の子という生まれで、大学を卒業してから米国とドイツに留学し、住友商事での勤務を経て三星刃物に入社した。
현재 5대 사장을 맡고 있는 와타나베 카가히사 씨는 창업자의 증손에 해당한다. 4명 남매의 막내로 유일한 아들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과 독일로 유학, 스미토모 상사 근무를 거쳐 미츠보시하모노에 입사했다.
현재 5대 사장을 맡고 있는 와타나베 카가히사 씨는 창업자의 증손에 해당한다. 4명 남매의 막내로 유일한 아들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과 독일로 유학, 스미토모 상사 근무를 거쳐 미츠보시하모노에 입사했다.
幼い頃から父の跡を継ぐのだと疑うこともなく育ったという渡邉社長だが、入社した1980年代後半は2度のオイルショックやプラザ合意によって日本経済が超円高に見舞われ、会社経営も困難を極めていた。円高によるコスト増を抑えるために、1987年に中国・深圳に工場を設立したが、工場の周囲には何もなく地平線が見えるような所だった。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뒤를 잇는다는 데 의심도 없이 자랐다는 와타나베 사장이지만, 입사를 한 1980년대 후반은 두번의 오일쇼크나 플라자합의*에 의해 일본 경제가 초 엔고에 타격을 받아 회사 경영도 곤란을 겪었다. 엔고에 의한 코스트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1987년에 중국 심천에 공장을 설립했지만, 공장의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지평선이 보일 것 같은 곳이었다.
* 1985년 9월 22일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이뤄진 달러 강세 ‘시정’으로 2년에 걸쳐 달러 가치는 30%가 떨어졌는데, 거꾸로 엔은 USD 1.00 = JPY 238에서 1년 뒤에는 USD 1.00 = JPY128가 되어 엔의 가치가 두 배나 오르며 엔고円高endaka 시대에 들어서 소위 ‘잃어버린 20년’을 맞게 됩니다 - 옮긴이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뒤를 잇는다는 데 의심도 없이 자랐다는 와타나베 사장이지만, 입사를 한 1980년대 후반은 두번의 오일쇼크나 플라자합의*에 의해 일본 경제가 초 엔고에 타격을 받아 회사 경영도 곤란을 겪었다. 엔고에 의한 코스트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1987년에 중국 심천에 공장을 설립했지만, 공장의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지평선이 보일 것 같은 곳이었다.
* 1985년 9월 22일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서 이뤄진 달러 강세 ‘시정’으로 2년에 걸쳐 달러 가치는 30%가 떨어졌는데, 거꾸로 엔은 USD 1.00 = JPY 238에서 1년 뒤에는 USD 1.00 = JPY128가 되어 엔의 가치가 두 배나 오르며 엔고円高endaka 시대에 들어서 소위 ‘잃어버린 20년’을 맞게 됩니다 - 옮긴이
「当時の中国では毎日のように“想定外”の出来事が起きた」と渡邉社長は振り返る。まず、工場を立ち上げると事務作業などを自動で行う自動機が使えないことが判明。敏感なセンサーがホコリなどに反応して機械が止まってしまうためだ。修理ができないので2、3日ラインが動かず、人を雇うほうがよいということになり、手作業で仕事を進めることになったという。
‘당시의 중국에는 매일 같이 ‘예상 밖의’ 일들이 일어났다’고 와타나베 사장은 되돌아 본다. 우선 공장을 세우는 면 사무 작업 등을 자동으로 하는 자동화 기계를 쓸 수 없음이 판명. 민감한 센서가 먼지 등에 반응해서 기계가 서 버리기 때문이다. 수리가 불가능해서 2,3일 라인이 돌지 않아 사람을 고용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수작업으로 일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중국에는 매일 같이 ‘예상 밖의’ 일들이 일어났다’고 와타나베 사장은 되돌아 본다. 우선 공장을 세우는 면 사무 작업 등을 자동으로 하는 자동화 기계를 쓸 수 없음이 판명. 민감한 센서가 먼지 등에 반응해서 기계가 서 버리기 때문이다. 수리가 불가능해서 2,3일 라인이 돌지 않아 사람을 고용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수작업으로 일을 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旧正月の土産用に商品を盗む、警備員と結託する…
구정 기념품용으로 상품을 훔치고 경비원과 결탁하다…
구정 기념품용으로 상품을 훔치고 경비원과 결탁하다…
問題はそれだけではなかった。現地スタッフの倫理観の違いにも翻弄された。あるとき、製品と在庫をチェックしていると、不良率を考えても商品が相当量足りないことが発覚した。調べてみると、当社のスプーンが近隣の商店で売られ、レストランでも使われていることが判明。驚くことに、従業員が工場から持ち出して売っていたのだった。
문제는 그것 만이 아니었다. 현지 스탭의 윤리관의 차이에도 농락당했다. 언젠가 제품과 재고를 체크했더니 불량률을 생각하더라도 상품이 상당량 부족한 것이 발각되었다. 조사해보니 당사의 스푼이 인근의 상점에서 팔리고, 레스토랑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것이 판명. 놀랍게도 종업원이 공장에서 들고 나가서 판 것이었다.
문제는 그것 만이 아니었다. 현지 스탭의 윤리관의 차이에도 농락당했다. 언젠가 제품과 재고를 체크했더니 불량률을 생각하더라도 상품이 상당량 부족한 것이 발각되었다. 조사해보니 당사의 스푼이 인근의 상점에서 팔리고, 레스토랑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것이 판명. 놀랍게도 종업원이 공장에서 들고 나가서 판 것이었다.
また、寮を調べたところ大量に製品が見つかったのだが、旧正月の前には地元への土産が必要なので盗難が増えるというのだ。そこで警備員を雇ったものの、逆に警備員と結託してしまう事態も起きた。従業員が材料仕入れで勝手に中間マージンを抜いていたこともあった。
또한 기숙사를 조사해보니 대량의 제품이 발견되었던 것인데, 정월 명절을 앞두고는 고향으로 들고 갈 기념품이 필요하니까 도난이 늘었다는 얘기였다. 거기다가 경비원을 고용했더니 역으로 경비원과 결탁해버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종업원이 자재 구매[과정 – 옮긴이]에서 마음대로 중간 마진을 뗀 일도 있다.
또한 기숙사를 조사해보니 대량의 제품이 발견되었던 것인데, 정월 명절을 앞두고는 고향으로 들고 갈 기념품이 필요하니까 도난이 늘었다는 얘기였다. 거기다가 경비원을 고용했더니 역으로 경비원과 결탁해버리는 사태가 일어났다. 종업원이 자재 구매[과정 – 옮긴이]에서 마음대로 중간 마진을 뗀 일도 있다.
なかなか黒字化しない中国工場の採算改善に本腰を入れたのは1990年代。中国の工場では日本で半製品にした物の最終加工を行っていたが、中国での一貫製造に挑むこととした。輸送コストの削減に加え、将来を見据えると中国での生産能力向上は必須と考えたからだ。
그다지 흑자화가 되지 않는 중국 공장의 채산성을 마음을 먹고 개선한 건 1990년대. 중국 공장에서는 일본의 반제품에 최종 가공을 했지만, 중국에서의 일관 제조에 도전하는 것으로 했다. 수송 코스트 삭감에 더해 장래를 내다보면 중국에서의 생산능력 향상은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다지 흑자화가 되지 않는 중국 공장의 채산성을 마음을 먹고 개선한 건 1990년대. 중국 공장에서는 일본의 반제품에 최종 가공을 했지만, 중국에서의 일관 제조에 도전하는 것으로 했다. 수송 코스트 삭감에 더해 장래를 내다보면 중국에서의 생산능력 향상은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ただ、一貫製造となると従来の加工作業とは勝手が違うことから、刃物製造の経験がある生産者を探す必要があった。中国の『三国志演義』には「青龍偃月刀(せいりゅうえんげつとう)」が出てくるのだからどこかで刃物を作っているはずだと思って聞いて回ると、「陽江(ヤンジャン)」だという。ところが、深圳と同じ広東省にあるにもかかわらず、10時間以上もかかってようやくたどり着き、なんとか生産者を見つけて1996年に工場を建設した。
그러나, 일관 제조가 되면 종래의 가고 작업과는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칼붙이 제조 경험이 있는 생산자를 찾을 필요가 있다. 중국의 ‘삼국지연의 三国志演義’에는 ‘청룡언월도(seiryuengetsuto)’가 나오니까 어디에선가 칼붙이를 만들고 있을 테다 라고 생각해서 돌아다니며 물어보니 ‘양지앙(Yangjian)’이라고 한다. 그러나 심천과 마찬가지로 꽝둥広東 성임에도 불구하고, 10시간 이상이나 걸려 결국 도착, 간신히 생산자를 찾아 1996년에 공장을 건설했다.
그러나, 일관 제조가 되면 종래의 가고 작업과는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칼붙이 제조 경험이 있는 생산자를 찾을 필요가 있다. 중국의 ‘삼국지연의 三国志演義’에는 ‘청룡언월도(seiryuengetsuto)’가 나오니까 어디에선가 칼붙이를 만들고 있을 테다 라고 생각해서 돌아다니며 물어보니 ‘양지앙(Yangjian)’이라고 한다. 그러나 심천과 마찬가지로 꽝둥広東 성임에도 불구하고, 10시간 이상이나 걸려 결국 도착, 간신히 생산자를 찾아 1996년에 공장을 건설했다.
技術やデザインを現地スタッフに教え生産は軌道に乗ったが、トラブルは絶えなかった。地方政府から理不尽な罰金や賄賂を要求され、それを断ると材料の輸入が止められるなど、日本では考えられないような問題が相次いで起きた。「そのたびに悩み、学び、スタッフと努力して助けられて、今日がある。生産が軌道に乗ったことで中国人パートナーにも感謝された」と渡邉社長は振り返る。
기술이나 디자인을 현지 스탭에게 가르쳐 생산은 궤도에 올랐지만, 트러블은 끊이지 않았다. 지방 정부로부터 끝이 없는 벌금이나 뇌물을 요구 받고 이걸 사양하면 자재 수입이 멈춰버리는 등, 일본에서는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가 연이어 일어났다. ‘그 때 고민하고, 배우고, 스탭과 노력을 한 데 도움을 받아 오늘이 있다. 생산이 궤도에 오름으로써 중국인 파트너에게도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와타나베 사장은 기억한다.
기술이나 디자인을 현지 스탭에게 가르쳐 생산은 궤도에 올랐지만, 트러블은 끊이지 않았다. 지방 정부로부터 끝이 없는 벌금이나 뇌물을 요구 받고 이걸 사양하면 자재 수입이 멈춰버리는 등, 일본에서는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가 연이어 일어났다. ‘그 때 고민하고, 배우고, 스탭과 노력을 한 데 도움을 받아 오늘이 있다. 생산이 궤도에 오름으로써 중국인 파트너에게도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와타나베 사장은 기억한다.
自社製品事業は社長夫人のパン教室がきっかけに
자사제품사업은 사장 부인의 빵 수업이 계기가
자사제품사업은 사장 부인의 빵 수업이 계기가
三星刃物の主力事業はOEMだが、有力メーカーからの受注を狙っても価格差で他国の企業に取られてしまうことも多かった。そこで、メーカーとしての生き残りを懸け2011年に始めたのが自社ブランド包丁「和NAGOMI」シリーズの製造販売だ。同事業に踏み切ったのは、「妻が開いているパン教室で、生徒さんに『なぜ三星ブランド製品を勧められないのか』と聞かれたこともきっかけになった」(渡邉社長)といい、意外なところから背中を押された形だ。
미츠보시하모노의 주력사업은 OEM이지만, 유력 메이커로부터 수주를 목표로 해도 가격차로 다른 나라 기업에 잡혀 버리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메이커로서의 생존을 걸고 2011년에 시작한 것이 자사 브랜드 식칼「和/wa/ NAGOMI」시리즈의 제조 판매다. 이 사업에 발을 들인 것은 ‘집사람이 열고 있는 빵 수업에서 학생들이 “왜 미츠보시 브랜드 제품은 없냐?’는 얘기를 들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와타나베 사장) 라고 하니, 의외의 장소에서 등을 떠밀린 형국이다.
미츠보시하모노의 주력사업은 OEM이지만, 유력 메이커로부터 수주를 목표로 해도 가격차로 다른 나라 기업에 잡혀 버리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메이커로서의 생존을 걸고 2011년에 시작한 것이 자사 브랜드 식칼「和/wa/ NAGOMI」시리즈의 제조 판매다. 이 사업에 발을 들인 것은 ‘집사람이 열고 있는 빵 수업에서 학생들이 “왜 미츠보시 브랜드 제품은 없냐?’는 얘기를 들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와타나베 사장) 라고 하니, 의외의 장소에서 등을 떠밀린 형국이다.
「刃物の町」関市で1873年に創業。戦前から海外進出を進めるなど、時代を先取りしてきた(写真:三星刃物)
‘칼붙이의 마을’ 세키 시에서 1873년에 창업.
제2차세계대전 이전부터 해외 진출을 진행하는 등 시대를 앞서 왔다. (사진 : 미츠보시하모노)
現在は自社ブランドで家庭用の三徳包丁からパン切り、ケーキナイフまで幅広く展開。デザイン、バランス、使い心地や切れ味、メンテナンス、置き方に140年間の歴史の中で培った技術を生かし、一本一本、職人が手造りしている。新聞や紙やすりで研ぐだけで切れ味が戻るのも特徴だ。
현재는 자사 브랜드로 가정용 다용도 식칼에서부터 빵 칼, 케이크 나이프까지 폭 넓게 전개. 디자인, 밸런스, 사용감이나 칼이 드는 정도, 메인터넌스, 보관 방법에서 140년간의 역사 속에서 자라난 기술을 살려, 한 자루 한 자루, 장인이 손으로 만들고 있다. 신문이나 샌드 페이퍼로만 갈아도 다시 칼이 들게 되는 것도 특징이다.
현재는 자사 브랜드로 가정용 다용도 식칼에서부터 빵 칼, 케이크 나이프까지 폭 넓게 전개. 디자인, 밸런스, 사용감이나 칼이 드는 정도, 메인터넌스, 보관 방법에서 140년간의 역사 속에서 자라난 기술을 살려, 한 자루 한 자루, 장인이 손으로 만들고 있다. 신문이나 샌드 페이퍼로만 갈아도 다시 칼이 들게 되는 것도 특징이다.
フランスで活躍する著名な日本人シェフもその仕上がりを絶賛するなど、一流シェフたちにもたいへん高い評価を受けている。「自分たちが心を込めて作った製品に対するお褒めの言葉をいただくことで、弊社のスタッフも『ものづくり』の喜びを感じることができている」(渡邉社長)と、OEMにはない喜びもあるようだ。
프랑스에서 활약하는 저명한 일본인 쉐프도 그 완성도를 절찬하는 등, 일류 쉐프들에게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자신들이 마음을 쏟아 만든 제품에 대한 칭찬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폐사의 스탶들도 ‘모노즈쿠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와타나베 사장)이라니 OEM에는 없는 즐거움도 있나 보다.
프랑스에서 활약하는 저명한 일본인 쉐프도 그 완성도를 절찬하는 등, 일류 쉐프들에게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자신들이 마음을 쏟아 만든 제품에 대한 칭찬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폐사의 스탶들도 ‘모노즈쿠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와타나베 사장)이라니 OEM에는 없는 즐거움도 있나 보다.
自社ブランド製品の売り上げは、全体に占める割合とすればまだ決して大きくはない。ただ、三星ブランド製品を使う料理人や主婦が国内外で増えれば、より「ものづくり」の喜びが得られ、さらなるよい製品が出てくるという好循環が生まれるかもしれない。
자사 브랜드 제품 매출은 전체에서 점하는 비율로 하면 아직 결코 트지 않다. 그러나, 미츠보시 브랜드 제품을 쓰는 요리사나 주부가 국내외에서 늘어난다면, 더욱 ‘모노즈쿠리’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더욱 좋은 제품이 나오는 선순환이 나올 지도 모른다.
자사 브랜드 제품 매출은 전체에서 점하는 비율로 하면 아직 결코 트지 않다. 그러나, 미츠보시 브랜드 제품을 쓰는 요리사나 주부가 국내외에서 늘어난다면, 더욱 ‘모노즈쿠리’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더욱 좋은 제품이 나오는 선순환이 나올 지도 모른다.
오늘도 끄트머리에 등장합니다만, 지난 주에 세계제일주의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언급된 일본의 모노즈크리 정신을 두고 어떤 분은 이것이 혹 일본의 물신주의物神主義의 일면이 아니냐고 합니다. 아마도 인간이 혼을 바쳐 만든 물건에는 신기神氣가 스며든 것으로 조차 여겨지고, 존경과 경외를 받는 존재로 추앙 된다는 논리였는데요, 일본 신토우神道의 만신주의pantheism적 성격을 생각해보면 한편 수긍이 갑니다. 오늘의 주제가 칼붙이라서인지 특히 그런 생각이 듭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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