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5일 토요일

2017.10.20 不安に強い人は「諦める」を習慣にしている 불안에 강한 사람은 ‘체념’을 버릇으로 하고 있다


이번 주에는 번이나 버럭, 번이나 하셨나요? 솔직히 말하면, 이루 수도 없이


不安「諦める習慣にしている
불안에 강한 사람은 체념 버릇으로 하고 있다

人生しみをぐっとらすコツがある
인생의 괴로움을 한층 줄이는 비법이 있다.

塩沼 亮潤 : 大阿闍梨、慈眼寺住職 시오누마 료우쥰 : 다이아쟈리*, 지겐지 주지
* 阿闍梨ajari 教授・軌範・正行 의미하는 산스트리트어 acarya 음역으로 제자들에게 모범이 되는 고승에 대한 경칭이라고 하는데요, 일본 불교의 真言宗Shingonshu 天台宗Tentaishu 승려에게 주어지는 직위입니다. 옮긴이

TOYOKEIZAI ONLINE 20171020

不安習慣とは(写真:さくさく /PIXTA) 불안에 강한 사람의 습관은?(사진:사쿠사쿠/PIXTA)

急に冷え込むようになり、夏の疲れがドッと出やすい季節。そこで、最も厄介なのは、心の疲れともいえるストレス、憂鬱、怒り、不安などです。
갑자기 추워져서 여름의 피로가 몰려오기 쉬운 계절. 여기서 더욱 골치 아픈 마음의 피로 라고도 있는 스트레스, 우울, , 불안 등입니다.
そうした疲れを癒やすには、普段のちょっとした心がけが重要です。日常で使えるちょっとした思考の工夫を、究極の荒行を通して人生の悟りを得た塩沼亮潤氏(新著に『歩くだけで不調が消える歩行禅のすすめ』)が語ります。
그런 피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보통 어지간한 유의가 중요하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어지간한 사고의 노력을 궁극의 고행을 통해 인생의 깨달음을 얻은 시오누마 료오쥰 (새로운 걷는 만으로 슬럼프不調 사라진다 보행선歩行禅 추천함’) 이야기합니다.

人生「四苦八苦」半分にできる
인생의 「四苦八苦」 절반으로 줄어든다

みなさんは、「四苦八苦」という言葉の本来の意味をご存じでしょうか。現在は慣用句として広く用いられていますが、もともとは仏教の用語で、人間が生きるうえで思うままにならないことを指す言葉です。
여러분들은 四苦八苦shikuhaku’라는 말의 본래 의미를 아시는 지요. 현재는 관용구로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만, 원래는 불교 용어로 인간이 살아가면서 생각하는 대로 되어가지 않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四苦」とは、根本的に人間が避けることのできない「生・老・病・死」の4つの宿命を意味します。人としてこの世に生まれてくること、 年老いていくこと、病に冒されること、そして死ぬこと。どうあがいても、誰も決して逃れることのできない必然的な定めです。
「四苦shiku 근본적으로 인간이 피할 없는 「生死」 가지 숙명을 의미합니다. 사람으로서 세상에 태어나는 , 연로해 가는 , 병에 걸리는 , 그리고 죽는 . 제아무리 애를 써도, 누구도 결코 도망갈 없는 필연적으로 정해진 겁니다.

「八苦」とは、人間が人間として生きていくうえで味わう、次の4つの苦しみを指します。
「八苦」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맛보는 다음의 가지 고통을 가리킵니다.

・欲しいものが手に入らない「求不得苦(ぐふとくり)」
좋아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하는 「求不得苦(gubutokuku*)」
* 원문의 ぐふとくり ぐふとくく 오타입니다. – 옮긴이

・愛する者と別れなければならない「愛別離苦(あいべつりく)」
사랑하는 사람과는 헤어지지 않으면 안되는「愛別離苦(aibetsuriku)」

・嫌な人と出会ってしまう「怨憎会苦(おんぞうえく)」
싫어하는 사람과 만나는 「怨憎会苦(anzoueku)」

・世の中はままならないものだという「五蘊盛苦(ごうんじょうく)」
세상은 마음대로 되지 안는 것이라는 「五蘊盛苦(gounjouku)」

これらは、決して避けようがない「四苦」とは本質的に大きく異なります。いったい、何なるのでしょうか
이렇다면, 결코 피할 없는 「四苦」와는 본질적으로 크게 다릅니다. 대체 뭐가 다른 걸까요?

答えは、「自分の心をうまくコントロールすることによって解決できる苦しみ」だということ。つまり、心がけ次第で、人生の四苦八苦のうち半分をなくすことができるのです。
답을 말하면,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함으로써 해결할 있는 괴로움이라는 . 결국 유의하기 나름이고 인생의 四苦八苦 가운데 절반을 없앨 이다는 겁니다.

みなさんの心のなかに“針”があると思ってください。針は、あなたの心の動きにしたがって右へ左へと行ったり来たりしています。何かいいことがあったり、気持ちが満たされたりすると、心の針はプラスのほうに振れます。
여러분의 마음 속에 바늘 있다고 생각해 주세요. 바늘은 당신의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좌우로 왔다갔다합니다. 뭔가 좋은 있거나, 기분이 만족하거나 하면 마음의 바늘은 플러스 쪽으로 흔들립니다.

かたや、怒りや不満でイラッとしたり、ムッとしたりすると、その瞬間、心の針はマイナスのほうに振れます。イライラする時間が長く続いたり、その頻度が多かったりすると、針はマイナスが定位置となってしまいます。
한쪽은 분노나 불만으로 부글거리거나 욱하거나 하면 순간 마음의 바늘은 마이너스 쪽으로 흔들립니다. 부글부글하는 시간이 계속되거나 빈도가 많아지거나 하면 바늘은 마이너스가 정해진 위치가 되어버립니다.

これはストレスを抱えている状態で、常態化すれば心身の健康にもよくありません。ときに、心の針が勢いあまって振り切れてトラブルを招いたり、最悪の場合は犯罪など取り返しのつかない事態に至ることもあります。
이것은 스트레스를 안고 있는 상태로 상태가 되면 마음의 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때로, 마음의 바늘이 힘이 남아서 눈금 밖으로 벗어나 트러블을 부르거나, 최악의 경우는 범죄 돌이킬 없는 사태에 이르는 일도 있습니다.

イラッとしたり、ムッとしたりして得することは何1つありません。イライラした分だけ、人生は悪い方向へ近づいていきます。私たちは、心の針の動きに振り回されるのではなく、自らコントロールする必要があるのです。
부글거리거나 욱하거나 해서 얻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부글부글 했기 때문에 인생은 나쁜 방향으로 가까이 갑니다. 우리들은 마음 바늘의 움직임에 흔들려 돌아다니지 말고 스스로 컨트롤을 필요가 있습니다.

「四苦八苦」克服方法
「四苦八苦」
극복방법


イラッとしたり、ムッとしたりしたときには、「あっ、いけない」と早く気づいて、心の針をプラスの方向に引き戻す努力をしなければいけません。つねに心の針を「プラスに向けよう、プラスに向けよう」と意識し、それを実践する必要があるのです。
부글거리거나 욱하거나 때는 , 안돼라고 바로 깨닫고 마음의 바늘을 플러스 방향으로 끌어 돌리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음의 바늘을 플러스로 돌려라, 플러스로 돌려라고 의식하고 그를 실천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前述した四苦八苦の「八苦」も、心の針をコントロールすることで克服が可能です。
전술한 四苦八苦「八苦」 마음의 바늘을 컨트롤함으로써 극복할 있습니다.

欲しいものが手に入らないときには、その存在を忘れてしまいましょう。「手元にないもの」や「手に入らないもの」について悶々と考えることをキッパリとやめ、かわりに「手元にあるもの」に焦点を当てて感謝しましょう。これは「知足」、つまり「足るを知る」という仏教の教えにも通じます。
좋아하는 것이 손에 들어오지 않을 때는 존재를 잊어버립시다. ‘ 안에 없는 이나 손에 들어오지 않는 대해서 몹시 괴롭다고悶々 생각하는 일을 단호하게 그만두고, 대신 손안에 있는 초점을 맞춰 감사합시다. 그게지족知足」, 결국 족함을 안다라는 불교의 가르침과도 통합니다.

愛する人との別離は、受け止めがたく苦しいものですが、この世のすべては諸行無常であり、会者定離(えしゃじょうり/この世で出会った者とは、必ず別れるときがくる運命にあること)が人の世の定めです。出会えた意味を考え、それに感謝しましょう。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받아 들이기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다만, 세상에 모두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며, 회자정리会者定離(eshajouri/ 세상에 만나는 것들은 반드시 헤어질 때가 운명에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의 정한 바입니다. 만났다는 의미를 생각하고 그에 감사합시다.

社会に出れば、嫌な人、苦手な人と出会ってしまうことも必然です。イラッムッというネガティブな感情にとらわれることなく
사회에 나오면 미운 사람, 껄끄러운 사람과 만나는 것도 필연입니다. 부글부글, 하는 네가티브의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なぜ、自分はこの人のことが苦手なのか?」
, 자기는 이런 사람과의 일이 서툰 걸까?’

「どうすれば好きになれるのか?」
어떻게 하면 좋아지는 걸까?’

「このご縁に向き合うことで、自分はどう成長できるのか?」
이런 연과 마주보는 일로 자신은 어떤 성장이 가능할까?’

このように、ポジティブな発想転換をはかりましょう。
이와 같이 포지티브한 발상의 전환을 노력해 봅시다.

そして、世の中はままならないものです。人生は自分の思いどおりにいかないことの連続ですが、そもそも、自分がコントロールできるのは自分だけ。自分以外の他者や外的状況をコントロールすることは不可能です。「思いどおりにしたい」という驕りを捨て、心の針をプラスへ向けながら、周囲と調和して謙虚に生きることで、人生の苦しみはぐっと軽減します。
그리고, 세상은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은 자신의 생각대로 되어가지 않는 일의 연속입니다만, 원래 자신이 컨트롤할 있는 것은 자신뿐. 자신 이외의 타자나 외적 상황을 컨트롤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생각대로 하고싶다 하는 교만 버리고, 마음의 바늘을 플러스로 향하게 하면서, 주위와 조화해서 겸허하게 살아감으로써 인생의 괴로움은 훨씬 경감됩니다.

しは“心のクセにすぎない

운이 좋고 나쁨은 마음의 버릇 지나지 않는다


心の針がプラスに向けば人生は明るい世界に向かい、心の針がマイナスに向けば人生は暗い方向に向かいます。実は、これが人生の「幸」と「不幸」の分かれ道。つまり、人生は、各人の心の在り方によって変わるということです。
마음의 바늘이 플러스로 향하면 인생은 밝은 세계로 향하고, 마음의 바늘이 마이너스를 향하면 인생은 어두운 방향으로 향합니다. 실은 이것이 인생의 불행 나누는 . 결국 인생은 각자 마음의 존재방식에 따라 바뀌는 것입니다.

人生の「運の良し悪し」は、実体のないあいまいなものでも、神通力に頼る他力本願的なものでもありません。ある意味、各人の“心のクセ”のようなものです。
인생의 운이 좋고 나쁨 실제가 없는 애매한 것이므로 신통력에 의지하는 타력본원*적인 것도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각자의 마음의 버릇 같은 것입니다.
* 타력본원他力本願 구도자 자신의 힘이 아니라 남의 힘에 의해 성불을 한다는 것인데요. 여기서 남의 힘이란 서방정토西方淨土에서 설파하며 일체중생을 구원하고자 아미타불阿彌陀佛 일으킨 서원誓願 말합니다. – 옮긴이

私自身も昔は、「自分は運が悪い」と思っていました。要領のいい人や、ズルをして利を得ているような人を横目に見ながら、ムカムカしたり、イライラしたりしては心を曇らせていた時期がありました。
자신도 옛날에는 자신은 운이 나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요령이 좋은 사람이나, 교활한 부려서 이득을 얻으려는 사람을 곁눈질하면서 메슥메슥해 하거나, 부글부글해 하거나 해서는 마음을 구름이 끼게 만든 시기가 있었습니다. 

しかし、大峯千日回峰行をはじめとする十数年にわたる修行や日々の心がけの結果、心の針がいつもプラスを向くようになりました。すると、人生に変化が訪れました。あらゆる物事が自然と、よいほう、よいほうへと運ばれていることに気がついたのです。
그러나, 오오미네센니치카이호우교우* 시작으로 해서 년에 걸친 수행이나 매일매일의 마음가짐의 결과, 마음의 바늘이 언제나 플러스를 향하는 같아졌습니다. 그렇게 하니 인생에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온갖 일이 자연스럽게 좋은 쪽으로 좋은 쪽으로 옮겨가고 있음에 정신이 것입니다.
* 大峯千日回峰行 千日回峰行sennichikaihougyou 1,000 동안 봉우리를 도는 수행이며, 大峯山Oomine 나라奈良 남쪽에 있는 영험한霊山입니다. 바로 옆의 코우야산高野山 그렇습니다만… – 옮긴이

運とは、「運ぶ」という漢字を書きます。これは、幸運や不運が、ある日突然に立ち現れるものではなく、脈々と続く流れによって運ばれるものであるということを表しています。
운이란 옮긴다라는 한자를 씁니다. 이는 행운이나 불운이 어느 돌연 눈앞에 나타난 것이 아니고 면면이 계속 흘러감에 따라 옮겨가는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つまり、いまの自分の心が、明日の自分が運ばれる方向を決めるということです。よい方向、悪い方向、自分の未来がどちらへ運ばれるかは、いまの自分の心次第なのです。
결국, 지금의 자신의 마음이 내일의 자신이 옮길 있는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좋은 방향, 나쁜 방향, 자신의 미래가 어디로 옮겨지는 지는 지금의 자신의 마음에 딸린 것입니다.

ときには、理不尽な不幸や悲劇に見舞われることもある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そこからどう立ち上がるか、どう希望を見いだしていくかは各人の心次第です。
때로는 불합리한 불행이나 비극이 덮쳐오는 일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거기서부터 어떻게 일어설까, 어떻게 희망을 찾아내 갈지는 각자의 마음에 딸렸습니다.

嫌な出来事や苦しい出来事があっても、悲しい出来事に見舞われても、それに引きずられることなく、心の針をマイナスからプラスのほうへと引き戻す努力をしましょう。
싫은 일이나 괴로운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덮쳐와도, 그에 질질 끌리는 일이 없이 마음의 바늘을 마이너스로부터 플러스 쪽으로 되돌리는 노력을 합시다.

「言葉で言うだけなら簡単だ。それができないからつらいんだ!」
말로 하는 것뿐이라면 간단하다.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괴로운 거다!’

このように思われる方も多いかもしれません。それでも、あえてお伝えします。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감히 전해 드립니다.

できなくてもいいので、努力を続けてください。最初から「できない」と決めつけていては、変化や成長はありません。できなくても諦めずに、コントロールしようとする努力を“継続する”ことに意味があるのです。
없어도 좋으니까 계속해서 노력하세요. 처음부터 라고 단정해서는 변화나 성장은 없습니다. 없더라도 단념하지않고 컨트롤하자고 하는 노력을 계속하는일에 의미가 있는 겁니다.

今日より明日、明日より明後日……と努力を続けていると、だんだんと、マイナスが定位置となっていた心の針が少しずつ真ん中のほうへ、そして真ん中からプラスのほうへと振れはじめます。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라고 계속 노력하면, 점점 마이너스가 정해진 위치가 되어 있는 마음의 바늘이 조금씩 한가운데 쪽으로, 그리고 한가운데에서 플러스 쪽으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釈迦様いた「人間4つの方」
부처님의 얘기한 인간의 가지 살아가는 방법

お釈迦様はかつて、「人間には4種類の生き方がある」というお話を説かれました。その4種類とは、次のようなものです。
부처님은 옛날에 인간에게는 4종류의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이야기를 설파했습니다. 종류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からへときていく人間 빛에서부터 빛을 향해 살아가는 인간

からへときていく人間 빛에서부터 어둠을 향해 살아가는 인간

からへときていく人間 어둠에서부터 어둠을 향해 살아가는 인간

からへときていく人間 어둠에서부터 빛을 향해 살아가는 인간

光というのは、人間が理想とするべき生き方。つまり、明るい光を求め、心の針がつねにプラスの方向を目指している、前向きでポジティブな生き方です。
빛이라는 인간이 이상으로 해야할 삶의 방식. 결국, 밝은 빛을 구하고, 마음의 바늘이 플러스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 전향적이고 포지티브한 삶의 방식입니다.


『歩くだけで不調える 歩行禅のすすめ 걷는 만으로 슬럼프가 사라진다 보행선을 추천함

一方、闇というのは、怒り、恨み、憎しみ、悲しみの気持ちにとらわれ、心の針はマイナスが定位置となったネガティブな生き方。つまり、人間としての成長を妨げる生き方です。
한편, 어둠이라는 것은 분노, 고통, 증오, 슬픔의 기분에 사로잡혀서 마의의 바늘이 마이너스가 정해진 위치가 되어 네가티브한 삶의 방식. 결국,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막는 삶의 방식입니다.

この説法において、お釈迦様が「闇から光へ」向かう生き方を示唆してくださったことは大いなる希望です。つまり、いま、どれほど真っ暗な「闇」の中にいる人でも、心がけ次第、努力次第で必ず「光」の世界へ行けるということです。
설법에 대해서 부처님은 어둠에서 빛으로향하는 삶의 방식을 시사해 주신 것은 위대한 희망입니다. 결국, 지금 어느 정도 새카만 어둠속에 있는 사람도 마음가짐에 딸린 , 노력에 딸린 것으로 반드시 세계로 있다는 것입니다.

今日から“心の針”の存在を意識してみてください。そして、その針がつねにプラスに向かうように心がけてください。針がマイナスを向いたことに気づいたら、すぐに元に戻す努力をしてください。これが、人生の苦しみを半減させる極意です。
오늘부터 마음 바늘 존재를 의식해 보세요. 그리고 바늘이 플러스로 향하도록 마음가짐을 하세요. 바늘이 마이너스를 향한다는 생각이 들면 원래로 되돌리는 노력을 하세요. 그것이 인생의 괴로움을 반으로 줄이는 비법입니다.

この努力を続けるうちに、いつしか、お釈迦様のおっしゃる「光」の生き方があなたのものになっているはずです。
이런 노력을 계속하는 가운데 어느덧 부처님 말씀의 살아가는 방식이 당신의 것이 되어 있을 겁니다.


종교적인 언급은 별도로 하고, 어떤 부분은 체념이 편하게 사는 방법이다 라는 얘기로 들려 불편하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아집과 과욕을 버리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는 얘기는 동의합니다. 투명하고 풍성한 가을 속에서 여유 있고 편안하게 보낼 주말이 기다리고 있는 금요일에 아침에 어울리는 글이 아닐까 합니다. []

댓글 없음:

댓글 쓰기